노을이 채색한 붉은 빛의 고성(古城), 그 아래 다리엔 헤겔의 흔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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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史·哲의 도시, 독일 하이델베르크
죄 지은 학생들을 수용했던 감옥
하이델베르크 여행은 옛 시가지로 향하는 하우프트 거리에서 시작된다. 독일 최초의 대학인 하이델베르크대가 자리한 곳이다. 수많은 문학가, 예술가, 과학자, 철학자 등이 이곳을 거쳐갔다. 철학자 헤겔과 카를 야스퍼스, 사회학자 막스 베버 등이 이 대학 교수로 재직했고, 55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하이델베르크대의 학생이거나 교수였다.
관광객의 흥미를 끄는 곳은 학생 감옥이다. 대학이 치외법권에 속하던 시절에 잘못을 저지른 학생들을 수용했던 곳이다. 수용되면 3일 동안 물과 빵만 먹어야 하고 수업을 받을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학생들 사이에서는 감옥에 다녀온 것이 무용담이었다고 하니 당시의 분위기는 꽤 자유로웠던 모양이다. 감옥 건물로 들어가 입장료를 내고 2층으로 올라가면 당시의 감방을 볼 수 있다. 방마다 작은 침대와 책상이 놓여 있고, 벽면에는 학생들이 기록한 낙서가 가득하다. 비장한 각오를 드러낸 진지한 문장부터 시시콜콜한 농담까지 모두 재치가 넘친다. 솜씨가 탁월한 그림도 많아 벽면은 마치 멋진 그라피티를 연상케 한다.
역사의 상흔 간직한 하이델베르크 성
하이델베르크 성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지하의 와인저장고에 보관된 거대한 큰 술통이다. 술통이 유명하다니 이상하게 들린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1751년 카를 테오도르 선제후의 명으로 만든 이 술통은 전쟁이나 전염병으로 성안의 마실 물이 부족해질 경우에 대비해 제작됐다. 130그루의 떡갈나무로 만든 술통은 길이 9m, 높이 8m에 이를 만큼 거대하다. 저장 용량은 22만1726L에 달해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큰 술통’으로 등재됐다.
술통 앞의 남자 목조각상도 이곳의 명물. “이 남자는 술통 관리인이었던 페르케오라는 인물입니다. 이탈리아에서 온 키 작은 광대였던 그는 소문난 애주가였죠. 하루에 18L의 포도주를 마시며 항상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80세까지 살았는데, 의사로부터 건강을 위해 술을 끊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그 다음날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와인저장고 직원의 재미있는 설명을 들은 뒤 와인을 한 잔 사서 마셨다. 어쩐지 페르케오가 술 마시는 관광객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듯하다.
철학자들이 걷던 길에서 바라보는 저녁 풍경
카를 테오도르 다리를 건너면 ‘철학자의 길’이라 불리는 산책로가 나온다. 칸트, 헤겔, 하이데거 같은 철학자들이 산책을 즐겼던 언덕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하이델베르크 성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성과 다리가 그림을 이루고, 노을이 거기에 붉은 채색을 더한다. 마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듯, 지난 장소들이 머리를 스친다.화려하면서도 황폐했던 성, 어두운 감옥에 남겨진 재치 넘치는 낙서들, 다리에서 들었던 멋진 노래가 잔상이 돼 마음에 오래도록 남을 것만 같다.
이것 만은 꼭!
하이델베르크 성 입구에서 산 정상까지 등산 열차가 운행된다. 성 앞까지의 왕복 요금은 입장료를 포함해 6유로이고, 산 정상의 전망대까지는 왕복 12유로, 편도 9유로다. 올라갈 때는 등산열차를 타고 도시 전경을 즐기고, 내려올 때는 걸어서 성을 돌아보며 오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가이드 안내를 요청하면 성안 구석구석 돌아보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요금은 성인 기준 4유로며, 영어로 진행된다.
하이델베르크(독일)=나보영 여행작가 alleyn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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