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유리에서 시작된 백신 혁명…탁월한 아이디어의 기원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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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스티븐 존슨 지음 / 강주헌 옮김 / 프런티어 / 323쪽 / 1만6000원
스티븐 존슨 지음 / 강주헌 옮김 / 프런티어 / 323쪽 / 1만6000원
진화론자들이 백악기(1억3500만년 전~6500만년 전)의 어떤 때부터 시작됐다고 얘기하는 꽃과 곤충의 진화과정이다. 꽃은 색과 향을 진화해 꽃가루의 존재를 곤충에게 알렸고, 곤충은 꽃가루를 추출하려고 복잡한 기관을 진화시켰다. 꽃은 에너지원인 꿀까지 동원해 수정이란 의식에 참여하도록 곤충을 유혹했다. 곤충은 꽃을 찾아내 접근하는 감각기관을 더 진화시켰다. 꽃과 곤충은 물리적으로 서로 협력해 생존하는 결과를 이뤄냈다. 전문 용어로 공진화(共進化·coevolution)라 일컬어지는 것이다.
공진화적 상호작용은 최초의 종과 관계가 없는 듯한 변화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꽃과 곤충의 공생은 벌새에게 꽃에서 꿀을 얻는 기회를 제공했다. 벌새는 꿀을 얻기 위해 대부분의 새는 흉내조차 내지 못하는 비행 기법을 진화시켰다. 날개를 회전해 위아래로 움직이며 꽃에서 꿀을 빠는 동안 공중에 떠 있는 방법이다.
저명한 과학저술가인 스티븐 존슨은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원제:how we got to now)》에서 “아이디어와 혁신의 역사도 이런 ‘벌새 효과’와 비슷한 방법으로 전개됐다”고 말한다. 한 분야의 혁신, 혹은 일련의 혁신이 완전히 다른 영역에 속한 듯한 변화를 끌어내는 현상이 여러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발생했다는 것이다.
1440년대 구텐베르크의 인쇄기가 등장한 이후 일어난 현상은 현대사에서 벌새 효과가 극명하게 발휘된 사례 중 하나다. 인쇄술의 발달로 책이 보급되고, 책을 읽고 쓰는 능력이 향상됨과 동시에 많은 이들의 시력에 결함이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 안경을 만들고 판매하는 시장이 형성됐다. 폭발적으로 증가한 안경시장의 경제적 유인은 광학 혁명을 주도한 새로운 전문가 집단을 탄생시켰다. 이들은 현미경을 발명했고 이는 세포와 박테리아, 바이러스의 발견, 백신과 항생물질의 발명으로 이어졌다.
존슨은 유리와 냉기(cold), 소리, 청결(clean), 빛, 시간 등 6가지 분야의 혁신사(史)를 벌새 효과와 자신이 ‘롱 줌(long zoom)’이라 이름 붙인 관점, 복잡계 이론의 ‘인접 가능성’ 개념을 주요 분석 도구로 삼아 살펴본다. 이를 통해 혁신의 기원과 조건, 원리, 과정, 파급 효과 등을 깊이 들여다보며 책 제목대로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흥미진진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펼쳐낸다.
저자는 인간이 목소리를 멀리 보내고, 원거리에서 주고받고, 증폭하고, 저장해서 재생하는 기술의 역사를 에디슨과 벨 같은 소수의 뛰어난 발명가들의 이야기로만 풀지 않는다. 18세기에 그려진 인간의 귀에 대한 해부도, 타이타닉호의 침몰, 망가진 진공관의 이상한 음향학적 특성 등이 소리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사회 진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아울러 설명한다. 혁신의 산물을 단편적으로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혁신에 관련된 테크놀로지가 어떤 과정을 통해 생겨나서 발전했으며, 우리 사회에는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에 주목한다.
라디오에서 재즈 음악이 인기를 끌면서 루이 암스트롱 같은 아프리카계 연주자들이 하루아침에 유명인이 됐다. 이들은 연예인으로서 자질을 발휘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도 존경받고 부유해질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 진공관으로 인해 소리의 증폭이 가능해지면서 대중 연설과 대형 공연이 이뤄졌다.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유명한 연설과 비틀스의 전설적 공연은 모두 진공관에 빚을 진 것이다. 그는 “역사를 개인이나 국가 차원에서 기술하는 게 더 이해하기 쉬울 수 있지만 그런 경계 사이에 머무는 것은 근본적인 면에서 정확하지 않다”며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려면 다양한 차원을 공평하게 다루는 ‘롱 줌’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세상을 변화시킨 새로운 혁신이 대부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천재들의 창의적 발상보다는 과거로부터의 연속성과 협력 네트워크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한다. 청결 부문의 혁신이 없었다면 지금의 컴퓨터 혁명이 가능했을까. 컴퓨터칩이 생산되는 청정실은 세균, 바이러스, 사람 몸에서 나오는 피부 세포 등 공기 중에 떠다닐 수 있는 모든 입자의 발생과 유입을 억제한다. 세균의 발견과 ‘청결 테크놀로지’가 선행되지 않았다면 고성능 컴퓨터의 등장도 불가능했다. 15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헬리콥터를 그려냈고, 19세기 찰스 배비지와 오거스타 에이다는 프로그램으로 작동되는 컴퓨터를 상상했지만 새로운 혁신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인접 가능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다른 아이디어들과 그물망처럼 연결되기 마련인 아이디어는 당대의 도구와 과학적 지식, 개념과 은유를 뒤섞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며 “그 시대의 관심과 기술, 환경의 네트워크에서 생겨난 아이디어는 단일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 변화를 불러일으킨다”고 설명한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공진화적 상호작용은 최초의 종과 관계가 없는 듯한 변화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꽃과 곤충의 공생은 벌새에게 꽃에서 꿀을 얻는 기회를 제공했다. 벌새는 꿀을 얻기 위해 대부분의 새는 흉내조차 내지 못하는 비행 기법을 진화시켰다. 날개를 회전해 위아래로 움직이며 꽃에서 꿀을 빠는 동안 공중에 떠 있는 방법이다.
저명한 과학저술가인 스티븐 존슨은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원제:how we got to now)》에서 “아이디어와 혁신의 역사도 이런 ‘벌새 효과’와 비슷한 방법으로 전개됐다”고 말한다. 한 분야의 혁신, 혹은 일련의 혁신이 완전히 다른 영역에 속한 듯한 변화를 끌어내는 현상이 여러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발생했다는 것이다.
1440년대 구텐베르크의 인쇄기가 등장한 이후 일어난 현상은 현대사에서 벌새 효과가 극명하게 발휘된 사례 중 하나다. 인쇄술의 발달로 책이 보급되고, 책을 읽고 쓰는 능력이 향상됨과 동시에 많은 이들의 시력에 결함이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 안경을 만들고 판매하는 시장이 형성됐다. 폭발적으로 증가한 안경시장의 경제적 유인은 광학 혁명을 주도한 새로운 전문가 집단을 탄생시켰다. 이들은 현미경을 발명했고 이는 세포와 박테리아, 바이러스의 발견, 백신과 항생물질의 발명으로 이어졌다.
존슨은 유리와 냉기(cold), 소리, 청결(clean), 빛, 시간 등 6가지 분야의 혁신사(史)를 벌새 효과와 자신이 ‘롱 줌(long zoom)’이라 이름 붙인 관점, 복잡계 이론의 ‘인접 가능성’ 개념을 주요 분석 도구로 삼아 살펴본다. 이를 통해 혁신의 기원과 조건, 원리, 과정, 파급 효과 등을 깊이 들여다보며 책 제목대로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흥미진진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펼쳐낸다.
저자는 인간이 목소리를 멀리 보내고, 원거리에서 주고받고, 증폭하고, 저장해서 재생하는 기술의 역사를 에디슨과 벨 같은 소수의 뛰어난 발명가들의 이야기로만 풀지 않는다. 18세기에 그려진 인간의 귀에 대한 해부도, 타이타닉호의 침몰, 망가진 진공관의 이상한 음향학적 특성 등이 소리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사회 진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아울러 설명한다. 혁신의 산물을 단편적으로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혁신에 관련된 테크놀로지가 어떤 과정을 통해 생겨나서 발전했으며, 우리 사회에는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에 주목한다.
라디오에서 재즈 음악이 인기를 끌면서 루이 암스트롱 같은 아프리카계 연주자들이 하루아침에 유명인이 됐다. 이들은 연예인으로서 자질을 발휘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도 존경받고 부유해질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 진공관으로 인해 소리의 증폭이 가능해지면서 대중 연설과 대형 공연이 이뤄졌다.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유명한 연설과 비틀스의 전설적 공연은 모두 진공관에 빚을 진 것이다. 그는 “역사를 개인이나 국가 차원에서 기술하는 게 더 이해하기 쉬울 수 있지만 그런 경계 사이에 머무는 것은 근본적인 면에서 정확하지 않다”며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려면 다양한 차원을 공평하게 다루는 ‘롱 줌’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세상을 변화시킨 새로운 혁신이 대부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천재들의 창의적 발상보다는 과거로부터의 연속성과 협력 네트워크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한다. 청결 부문의 혁신이 없었다면 지금의 컴퓨터 혁명이 가능했을까. 컴퓨터칩이 생산되는 청정실은 세균, 바이러스, 사람 몸에서 나오는 피부 세포 등 공기 중에 떠다닐 수 있는 모든 입자의 발생과 유입을 억제한다. 세균의 발견과 ‘청결 테크놀로지’가 선행되지 않았다면 고성능 컴퓨터의 등장도 불가능했다. 15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헬리콥터를 그려냈고, 19세기 찰스 배비지와 오거스타 에이다는 프로그램으로 작동되는 컴퓨터를 상상했지만 새로운 혁신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인접 가능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다른 아이디어들과 그물망처럼 연결되기 마련인 아이디어는 당대의 도구와 과학적 지식, 개념과 은유를 뒤섞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며 “그 시대의 관심과 기술, 환경의 네트워크에서 생겨난 아이디어는 단일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 변화를 불러일으킨다”고 설명한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