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최근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 1~4안’을 발표했다. 정부가 제시한 네 개 안은 2030년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 8억5060만t을 기준으로 각각 14.7%(1안), 19.2%(2안), 25.7%(3안), 31.3%(4안)를 줄이는 것이다. 1~4안 중 어느 것을 선택해도 정부가 2009년 정한 2020년 배출 목표량(5억4300만t)보다는 많다. 온실가스 배출 규제를 크게 완화한 것이다. 정부는 공청회 등을 통해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최종 감축 목표를 정해 이달 말 유엔에 제출하기로 했다.

최종 목표 제출 기한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산업계와 환경단체는 모두 정부 제시안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산업계는 이미 한국 기업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에너지 효율을 달성한 만큼 감축률이 가장 낮은 1안도 지키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반면 환경부를 비롯한 환경단체들은 배출 규제를 대폭 완화한 정부 제시안은 지난해 말 기후변화당사국 총회에서 합의한 ‘감축목표 후퇴금지 원칙’에 어긋나는 처사라고 맞선다. 유동헌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배출 목표량을 더 늘려야 한다는 논리를, 김용건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목표량을 감축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후퇴 말아야” / “최초의 감축목표 후퇴國 오명…한국, 국제적 압력 직면할수도”

오히려 온실가스 분해 등 新사업 발전 기회


교토의정서를 대체하는 ‘신(新)기후체제’가 올해 말 열리는 제21차 유엔기후총회에서 출범한다. 신기후체제의 핵심은 모든 국가가 9월 말까지 제출하는 2020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 목표(INDC)다. 한국 역시 최종 감축 목표를 확정하기 위해 최근 4개 감축안을 제시했다.

문제는 정부가 제시한 4개 감축안이 모두 국제사회의 기대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4개 안(5억8500만~7억2600만t 배출) 모두 2020년 감축 목표(5억4300만 배출)보다 후퇴했다. 이는 ‘후퇴방지 원칙’에 정면으로 반한다는 것이 국제사회와 시민단체의 지적이다. 후퇴방지 원칙은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겪은 일본이 감축 목표를 후퇴시키면서 신기후체제 협상의 핵심 원칙으로 부각됐다.

산업계는 한국은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돼 후퇴방지 원칙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유엔 결정문에는 ‘모든 국가의 감축 목표’가 적용 대상이라고 명시돼 있다. 선진국, 개도국을 막론하고 그간 INDC 제출국 중 감축 목표를 후퇴시킨 국가는 한 국가도 없는 만큼 한국은 ‘최초 감축 목표 후퇴국’이라는 오명을 쓸 판이다.

더욱이 한국은 2009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발표할 때 선진국과 개도국이 기후변화 문제를 두고 ‘남 탓’만 하는 상황을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앞장서서 감축 목표를 제시했다.

만약 한국이 현재 감축안을 고수한다면 신기후체제 형성을 가로막는 주범으로 지목돼 국제적 압력을 받을 수 있다. 국내총생산(GDP) 13위, 배출량 7위의 한국이 감축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멕시코 등 다른 개도국에도 강한 감축을 요구할 명분을 잃기 때문이다.

산업계의 주장과 달리 온실가스 감축이 반드시 경제성장을 억제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2012년 한국 GDP가 전년 대비 3.3% 성장한 반면 온실가스 배출량은 0.6% 증가하는 데 그쳐 온실가스 감축과 경제성장 사이의 관계에서 ‘탈동조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게다가 유럽연합(EU)은 1990년부터 2012년까지 44%의 경제성장과 26%의 온실가스 감축을 동시에 달성한 사례를 보여주기도 했다.
단기적으로 산업계가 어려움을 겪을 수 있지만 에너지 소비량의 95% 이상을 수입하는 한국에 온실가스 감축은 오히려 경제적 기회를 창출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신재생에너지, 온실가스 분해 등 다양한 신(新)산업이 발달할 기회일 수 있다.

감축 목표 설정과 관련해 또하나 중요한 것은 목표 설정 방식이다. 감축 목표 제시 방법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인위적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배출될 것으로 예상되는 온실가스 총량을 추정한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BAU) 방식’과 특정 기준 연도 대비 감축량을 비교하는 ‘절대량 방식’ 등으로 나뉜다. BAU 기준을 따르는 한국은 지난해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하면서 BAU 산정 절차의 적절성 논란에 휩싸여 큰 사회적 비용을 치렀다. 정부는 유동성이 있는 BAU 대비 감축 목표 대신 절대적 감축 목표를 설정해 국내외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정책 의지를 확실히 보일 필요가 있다. 국제사회와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한국 정부가 2020년 감축 목표보다 진전된 감축 목표를 낼 수 있기를 희망한다.

“더 완화해야” / “에너지 효율 이미 세계적 수준…가장 완화된 정부案조차 무리”

후퇴방지 원칙은 의무 감축 선진국 겨냥한 것


정부는 연말에 파리에서 열리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196개 당사국 총회에 대비해 유엔에 제출할 자발적 기여안의 기초가 되는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BAU)와 국가 감축 시나리오를 지난 11일 발표했다. 정부 감축안에 따르면 2030년 BAU인 8억5000만t을 기준으로 최소 14.7%(1안)에서 최대 31.3%(4안)를 감축해야 한다.

정부가 새로운 감축안을 발표하자 2009년 감축안보다 후퇴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하지만 이런 비판은 BAU에 대한 인식 부족에 따른 것이다.

BAU는 특별한 감축 노력을 하지 않을 경우 배출될 것으로 예상되는 장기 배출 전망치다. 2009년 전망 이후 에너지 소비 효율은 올라갔고 온실가스 배출 효율도 개선됐다. 2009년 당시에는 향후 4~5년간 에너지 소비 효율 개선 예상치를 반영해 계산했기 때문에 BAU 자체가 과소 추정됐다.

또 유엔 제출 자료 작성 기준에서 제시한 후퇴방지 원칙은 1997년 12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에서 체결된 교토의정서에 참가한 의무감축국(선진국)들이 공약 수준보다 후퇴할 것을 우려해 추가한 것이다. 의무감축국이 아닌 한국에 이 원칙을 적용해야 하는지는 세계적으로 합의된 것이 없다.

선진국의 온실가스 배출은 1990년대 이후 감소세에 접어들었지만 한국은 빠른 증가세를 보인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는 한국 산업계의 감축 노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수출 중심 산업구조 때문이다. 선진국은 서비스업 위주 산업구조여서 에너지 소비가 증가하지 않아도 경제가 유지된다. 반면 한국은 경제 성장을 위해 수출해야 하는 제조업 중심의 에너지 다소비 산업구조여서 온실가스 배출이 늘어나는 것이 불가피하다.
일부에서는 산업구조를 제조업에서 서비스업 위주로 바꾸자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잘할 수 있고 잘하고 있는 업종(제품)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것이 세계 경쟁 시장의 현실이다.

정부 감축안 가운데 가장 적게 줄이는 1안조차 에너지 효율 개선을 지나치게 낙관하고 있다. 에너지 소비 효율 개선이 상대적으로 수월했던 1990년 이후 23년 동안에도 GDP 한 단위 생산에 필요한 에너지를 22.2%밖에 줄이지 못했다. 앞으로 16년간 GDP 한 단위 만드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그 이상 줄이겠다는 목표는 다소 의욕적이다. 한국 산업계는 지금도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의 에너지 효율을 보이고 있어 1안 달성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산업계는 에너지 소비 효율 달성과 국제 경쟁력 확보를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설비를 도입해 철강, 정유, 석유화학 등 대표 업종들은 많은 생산설비를 최신 장비로 구성해 놓았다. 따라서 기존 설비보다 더 효율이 높은 최신 기술과 장비를 도입하고 성과를 내기엔 16년이 넉넉하지 않으리라고 판단된다.

다만 한국의 생산 물량이 줄어든다면 온실가스 감축도 자연스럽게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산업 경기가 후퇴하는 것을 국민이 바라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온실가스 감축 자체가 목적이어서는 안 된다. 에너지 소비 효율을 높이고 기술 경쟁력을 확보한 결과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어드는 것이 경제 발전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 자연스럽고 지속 가능한 온실가스 감축 방안이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