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허점투성이 '메르스 진료시스템'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이 잇달아 발생하던 2013년 9월, 보건복지부와 서울시는 메르스 국내 환자 발생에 대비해 체계적인 진료시스템을 구축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사우디에서 근무하던 한국인 근로자가 메르스와 비슷한 증상으로 사망하는 등 국내에도 메르스가 유입될 수 있다는 우려가 처음으로 제기됐을 때였다.

당시 정부와 서울시는 메르스 환자 발생 시 격리 입원 치료를 담당하는 국가지정 입원치료병원과 서울 지역 거점병원을 선정했다. 국가지정 병원은 국립중앙의료원, 서울대병원, 서울의료원 등 세 곳이며 지역 거점병원은 K대병원을 비롯해 총 6개 대학병원이었다. 정부가 예산을 지원해 음압병상을 설치해 준 곳이다. 음압병상은 기압을 외부보다 낮게 유지해 바이러스가 외부로 나가지 못하도록 한 병실이다. 이들 병원과의 진료체계 사전준비로 환자 발생 시 신속하고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협력체계가 구축돼 있다는 게 당시 설명이었다.

하지만 서울에서 메르스 환자가 격리돼 있는 병원은 국립중앙의료원, 서울대병원, 서울의료원 등 세 곳에 불과하다. 이들 병원의 음압병상 수는 30여개다. 메르스 확진 환자와 중증 의심자들을 모두 수용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서울 지역 거점병원 중 메르스 환자와 중증 의심자들을 수용한 곳은 아직까지 단 한 곳도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들 병원은 한 곳당 음압병상 수가 4~5개 정도로 많지 않은데다 이마저도 이미 결핵환자 등 다른 환자들이 입원해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메르스 환자와 중증 의심자들을 다른 지역 병원에 격리시키려고 했지만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거부하는 등 ‘지역 이기주의’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거점병원 외 음압병상을 보유한 다른 민간 병원들도 메르스가 퍼지는 것을 우려해 난색을 표하고 있다.

최근의 상황은 ‘메르스 환자 발생 시 신속하고 빠르게 대응하는 협력체계가 갖춰져 있다’는 2년 전 정부와 서울시 설명과는 거리가 멀다. 정부의 잘못된 초기 대응으로 메르스가 확산된 것도 모자라 진료시스템 미비로 치료와 격리마저 제때 이뤄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강경민 지식사회부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