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통증이 심해져 입원했을 때, J는 일흔이 넘은 신장암 말기 환자였다. 발병 이후 수술과 항암 치료를 계속 받았지만 암세포의 괴력을 물리치지는 못해 살 수 있는 날이 불과 몇 달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7년 전 부인과 사별한 그는 혼자 지냈고 집 근처에 사십 대 독신 아들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전철로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진 곳에 결혼한 딸이 하나 있었다. 병원에서는 가까이 사는 아들을 환자의 보호자 격으로 불렀다.





아들 이야기에 따르면, J는 전형적인 일벌레 가장이었다. 철강업 관련 엔지니어로 후배들의 신망도 두터웠다. 하지만 퇴직한 후로는 사회와 연결고리가 끊어지면서 집에서만 지냈다.





“저희 아버지는 별다른 취미가 없으세요. 퇴직하고 나서는 다른 소일거리도 찾지 않으셨지요.”





아들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저 성실하신 분. 일밖에 모르시고, 취미도 없으시고, 말씀도 없으시고.”





자녀들 교육은 부인이 도맡아서 했다. 그러니 아들 입장에서 아버지는 멀기만 한 존재였다. 반면 어머니는 활달하고 밝은 성격이라 집에는 항상 따스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러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마치 햇살이 사라진 것처럼 집은 급격히 생기를 잃었다.





아들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관찰자의 눈으로 아버지를 설명했다.





“그래도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집안 분위기가 좋았어요. 워낙 밝은 분이라 무뚝뚝한 아버지한테 말도 걸어주시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아버지는 집 밖을 나가지 않으셨어요. 근처 밥집에서 식사하시거나 포장마차에서 술을 드실 때 말고는요.”





아들은 긴 한숨을 쉬며 말을 이어나갔다.





“선생님, 저희 아버지는 몇 달밖에 못 사시는 거죠? 지금 이 상태로는 혼자 집에서 지내시기 어려울 테니 그냥 병원에 쭉 계셨으면 하는데요. 만약 이 병원이 안 되면 다른 병원으로 모셔야지요.”





아들의 말대로 J는 혼자 지내기 어려워 보였다. 양 볼은 옴폭 패이고, 눈은 쑥 들어가고, 다리에도 전혀 근육이 잡히지 않았다. 그는 하루하루 기력이 쇠해 간신히 병원을 걸어다녔다.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던 어느 날 그가 불쑥 말을 꺼냈다.





“선생님, 이제 집에 가야겠습니다.”





의료진 모두가 놀랐다. 연락을 받고 달려온 아들도 퇴원을 반대했다. 하지만 J는 완강하게 퇴원을 고집했다. 퇴원한 그의 집을 방문해 진료를 하게 되면서 나와 J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그는 어두침침하고 좁다란 거실에 침대를 놓고 생활하고 있었다. 침실은 2층이었지만 계단 오르내리기가 힘들어 살림살이를 모두 1층으로 옮겨놓은 것 같았다. 하지만 1층에도 널찍한 방이 있었기에 조금 의아했다. 거실 한구석에는 불단을 모셔두었는데, 그것이 거실을 한층 좁게 만들었다.





“좀 어떠세요?”





내가 이렇게 말을 걸면 그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기본적으로 괜찮다는 말밖에 하지 않는 환자라고 전해 들었는데, 정말 그 말만 했다. 가슴 통증이 심할 때조차 그는 괜찮다고 했다. 요즘에는 통증을 덜어주는 약들이 많이 나왔다고 알려주었지만 마찬가지였다. 괜찮다고, 고통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듯 보였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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