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왕국을 통치하는 왕은 근심에 빠졌다. 대화와 평화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정작 끊임없이 다투며 나라를 위기에 빠뜨려서다. 왕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신념 토론대회’를 연다. 무신론자인 생물학 교수, 동양의 요가 수행자, 신앙심이 깊은 여성 수학자가 토론자로 선정돼 사흘간 설전을 벌인다.

《왕비와 수도사와 탐식가》는 토론대회에서 나온 3인의 주장과 사상을 통해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철학적인 문제를 풀어낸다. 대회 기간 매일 다른 논제가 제시된다. ‘나는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인식할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경험할 수 있는가’다. 토론 중간중간에 사람들이 평소 생각했을 법한 질문들이 나온다. 예를 들어 “당신과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이제 3개월밖에 살지 못하게 돼서, 죽은 후에는 무엇이 있느냐고 당신에게 묻는다면 어떤 답변을 제시할 것인가”란 물음이 참가자들에게 주어진다.

유물론자인 교수는 “죽음이 어떤 신비도 아니고 목적을 지니고 있지 않다며 남아 있는 삶을 즐기라고 말할 것”이라고 답한다. 여성 요가 수행자는 “명상을 통해 침잠해 현재의 육신을 떠나 새로운 육신을 맞을 준비를 하라고 말해줄 것”이라고 한다. 수학자는 “내 안에 살고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라는 예수의 말을 인용한다. 각계의 신념을 대표하는 토론자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실제로 어느 토론회장에 불려 온 듯한 느낌이 든다.

책을 옮긴 종교사학자 김경곤 씨는 “얼마나 많은 종교인이 다른 종교인과 무신론자. 불가지론자의 입장과 사상을 알까”란 의문을 던지며 “무지에 찬 확신보다 솔직한 질문과 의심이 필요한 시대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저자는 2005년 백혈병에 걸린 아들을 떠나보낸 아픔이 있다. 그는 아들에게 “무신론자는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고, 불가지론자는 신이 존재하는지 아닌지 모르는 사람이며, 신앙인은 신을 신뢰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아들은 “그렇다면 우리 안에는 무신론자와 불가지론자, 신앙인이 모두 함께 존재하는 것 같다”고 답했다.

책을 추천한 박정남 교보문고 구매팀 과장은 “왜 사는가, 왜 죽는가, 신은 있는가 등의 질문은 학생 때가 아니면 생각하기 쉽지 않다”며 “죽음과 삶, 사상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이 책을 통해 정리해본다면 사회에 나간 후에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추리소설 형식을 지닌 이 책은 ‘다원성에 대한 이해와 열린 마음’이 진리를 찾는 데 필요한 열쇠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