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들이 2·3세가 대주주로 있는 회사에 주식 등 재산을 증여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재산을 자손이 아닌 회사에 넘기면 세율이 높은 증여세(최고 50%) 대신 법인세(최고 22%)만 부과되는 점을 눈여겨본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하지만 과세당국은 회사를 통한 증여가 경영권 간접 승계로 이어진다고 보고 법인세 대신 증여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2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배선화 문배철강 회장은 보유하고 있던 27억원 상당의 문배철강 지분 123만7680주(6.04%)를 회사에 무상 증여했다고 지난 20일 공시했다. 문배철강은 배 회장의 장남(배종민 대표이사)과 손자(배승준 씨)가 최대주주(15.05%)와 2대 주주(14.29%)로 특수관계인 지분이 42.76%에 달한다. 배 회장은 다음날인 21일 장남 등 특수관계인과 문배철강이 57.9%의 지분을 보유한 NI스틸 지분 3.52%(24억원 상당) 역시 무상으로 NI스틸에 증여했다.
자녀 회사에 증여하는 '우회상속' 증가…국세청 "증여세 물릴 것"
문배철강 관계자는 “배 회장이 회사 발전을 위해 본인 지분을 전량 무상으로 내놓기로 한 만큼 회사가 얻은 자사주 수익에 대해선 법인세로 납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국세청은 이 같은 증여 방식이 ‘증여세 완전 포괄주의’(자산을 타인에게 무상·저가로 양도하면 최고세율 50%인 증여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세법 원칙)에 해당한다고 보고 증여세를 물리겠다는 방침이다. 자녀가 대주주로 있는 회사에 주식을 몰아주고 회사의 가치와 이익을 늘려주는 것은 ‘편법 증여’ 소지가 있다는 것.

국세청은 비상장 회사를 이용한 지분 증여에도 비슷한 잣대를 들이댈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제분은 최대주주였던 이종각 회장이 자회사인 디앤비컴퍼니에 보유 지분(18.98%)을 전량 현물 출자했다고 21일 공시했다.

이 회장의 장남인 이건영 대한제분 대표이사(6.01%) 등 특수관계인이 81%를 소유한 디앤비컴퍼니는 이 회장의 지분을 받아 최대주주에 오르고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332만주를 이 회장에게 넘겨줬다.

김완일 가나 세무법인 대표는 “그동안 비상장주식 증여는 상장주식과 달리 미래가치가 반영되지 않아 세금을 적게 물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그 이점이 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2008년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은 100% 지분을 가지고 있던 그룹 계열사 하이스코트의 주식 전부(시가 1228억여원)를 장남과 차남이 모든 지분을 소유한 회사 삼진이엔지에 무상으로 증여했다가 국세청으로부터 총 328억원 상당의 증여세를 추징당한 바 있다. 장남과 차남은 증여세 취소 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과세하지 않을 경우 국가가 부(富)의 무상이전에 조력하는 결과가 돼 조세형평에 어긋난다”며 국세청 손을 들어줬다.

효성가(家)도 2012년 조석래 회장의 막냇동생인 조욱래 디에스디엘(옛 동성개발) 회장이 세 자녀가 100% 지분을 보유한 디에스아이브이(옛 광문타워)에 주식을 물려준 건으로 254억원의 세금을 추징당했다.

그러나 경제계는 과세당국이 증여세 포괄주의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고 있다고 반발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회사의 경쟁력 제고나 지주회사 전환 등 목적이 명확한 경우에도 과세하는 건 문제가 있다”며 “이미 부과한 법인세에 증여세를 별도로 추징하는 것은 명백한 ‘이중과세’”라고 지적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