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초, 구(舊) 소련의 전쟁 영웅 레오(톰 하디 분)는 정보 기관에 근무하던 중 자신의 아내를 스파이로 고발해야할 처지에 몰린다. 아내는 사실 스파이가 아니었지만 상관은 레오의 맹목적인 충성심을 시험하려고 했다. 레오는 차마 아내를 고발하지 못하고, 시골 민명대로 좌천된다. 그곳 숲속에서 어린이의 사체가 발견되고 그것이 연쇄 살인범의 소행이라고 단정한 레오는 추적에 나선다. 그러나 스탈린 독재 정권은 자칭 ‘완벽한 국가’여서 범죄란 일어나지 않는다고 거짓 선전하고 있다. 그는 정권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오는 28일 개봉하는 ‘차일드 44’(다니엘 에스피노시 감독)는 실화에 바탕한 동명 베스트셀러 원작을 옮긴 스릴러 수작이다. 레오의 개인사와 독재 정권 치하의 아동 연쇄살인 사건이란 두 기둥 줄거리를 넘나들며 독재 체제의 허상을 비판하고 진실이 얼마나 접근하기 어려운 것인지 보여준다.

레오가 영웅이 되는 도입부는 이런 주제를 암시한다. 2차 대전 당시 베를린을 점령한 소련군의 한 병사가 소련 깃발을 꼽으려는 순간, 그의 팔목에 전장에서 습득한 시계들이 여러 개 감싸고 있는 게 발견된다. 그 사진이 보도되어서는 안된다고 판단한 상관은 시계를 차고 있지 않던 레오에게 깃발을 꼽는 역할을 맡긴다. 이 장면은 전쟁의 역사와 영웅의 신화가 얼마나 날조하기 쉬운 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승전한 스탈린 독재 정권은 무고한 시민들에게 ‘첩자’ 누명을 씌우는 공포정치로 질서를 유지한다. 진실을 조작하고 거짓으로 포장하는 것을 일상화한 체제다. 마침내 레오에게도 거짓을 강요하는 순서가 닥친 것이다. 명령 불복종은 좌천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레오는 옛 부하들에게 수차례 살해당할 위기에 물린다.

독제 체제의 폐해는 개인의 숙청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도 제시한다. 44명의 아동들이 연쇄 피살됐음에도 침묵을 강요할 만큼 사회적 부작용과 불안을 키우는 것이다.

온갖 난관 속에서도 진범을 찾으려는 레오의 노력은 뜻밖에 진실한 사랑을 얻는 성과로 이어진다. 아내 라이사는 원래 레오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당시 권력자였던 그의 청혼을 거부하면 목숨이 위태로울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러나 남편과 연쇄살인범을 함께 찾는 과정에서 그의 진심을 받아들이게 된다. 목숨을 걸고 진실을 추적하는 레오의 용기에 감화된 것이다. 영화는 진실을 추구하는 것은 고단하고 위험천만한 작업이지만 사랑을 얻어낼 만큼 가치가 있다는 메시지를 고스란히 전달한다.

유재혁 대중문화 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