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5월20일 오후 4시41분

기관투자가들이 금리상승에 따른 평가손실을 우려해 회사채 매수를 꺼리면서 우량 기업조차 모집금액을 채우는 데 실패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예상보다 높은 이자를 약속하거나 발행 시점을 늦추는 등 기업들의 자금조달 계획이 큰 차질을 빚고 있다.

LG상사 수요예측 실패

[마켓인사이트] 금리상승 경계감에…대기업 회사채 발행도 '차질'
20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LG상사가 전날 시행한 총 2000억원 규모의 3·5·7년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3년과 5년짜리 회사채에 대한 수요가 미달됐다. 증권사 관계자는 “7년 만기 회사채는 모집 한도인 700억원을 모두 채웠지만 3년과 5년 만기 회사채는 각각 600억원, 700억원 모집액 중 200억원과 300억원이 모자랐다”고 말했다.

신용등급이 높은 현대위아(AA)에 이어 LG상사(AA-)도 수요예측에 실패하면서 회사채시장에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앞서 현대위아는 지난 7일 2000억원 규모 회사채를 발행하기 위해 수요예측을 했으나 1400억원을 모으는 데 그쳤다. 모집금액 미달분은 전량 주관 증권사가 떠안았다.

최근 시중금리가 상승세(회사채 가격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회사채 투자심리가 위축된 데 따른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채권금리가 단기간에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저마다 손실 위험을 줄이기 위해 투자를 자제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달 중순까지만 해도 금리 하락세에 힘입어 우량 회사채 수요예측에 통상 모집액의 2배가 넘는 수요가 몰리던 것과는 정반대 양상이다. ‘AA’급 5년 만기 회사채 평균금리는 지난달 9일 연 2.05%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한 뒤 이날 2.42%로 0.4%포인트 넘게 상승했다. 한 자산운용사 채권운용역은 “시중금리가 오를 것으로 판단한 투자자들이 유동성이 떨어지는 회사채 매수를 주저하고 있다”며 “금리 방향이 바뀔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7년물엔 꾸준한 수요

회사채 수요 부진으로 국내 기업들의 자금조달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반도체용 웨이퍼 제조업체인 LG실트론은 이달 말께 1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하려던 계획을 최근 보류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다른 사정도 있겠지만, 최근 금리가 상승세로 돌아선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수요예측 흥행에 실패한 기업들은 회사채 발행을 미루거나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해야 한다.

다만 만기 7년 이상 장기 채권은 여전히 수요가 많다고 시장 참여자들은 전했다. 연기금과 공제회, 보험사 등 기관을 중심으로 꾸준한 매수가 이뤄지고 있어서다. 이들 기관은 주로 절대금리가 높은 장기채권을 사서 만기까지 보유한다. 만기까지 보유하는 채권은 회계처리 기준에 따라 금리 등락에 따른 손익을 매번 반영하지 않아도 된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