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또 카드수수료에 개입하려는 정부
“금융회사가 돈 버는 것 자체를 죄악시하는 분위기가 있다. 그러면서 금융의 삼성전자가 나오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말 아닌가.”

한 카드회사 고위 관계자는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를 압박하는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기준금리 인하로 조달금리가 떨어진 만큼 수수료율을 더 내려야 한다는 정부와 정치권의 압박은 이미 시작됐다.

여신금융협회와 금융당국은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카드 수수료율의 원가에 해당하는 ‘적격비용’을 재산정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2012년 가맹점 수수료 체계를 전면 개편할 때 3년마다 적격비용을 재산정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카드업계는 정부가 수수료율 인하를 기정사실화한 채 형식적으로 TF를 운영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불만을 갖고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 3월 인사청문회 때부터 “연내 카드 수수료율 인하를 추진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방침을 정해놓고 TF라는 절차를 밟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정치권도 가세했다. 이미 국회에는 수수료율에 상한선을 부과하거나 모든 금융회사에 카드 전표 매입권을 주는 등 카드 수수료율을 떨어뜨리려는 법안들이 다수 발의돼 있다.

정부와 정치권의 가격 개입에 따른 부작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자동차 카드복합할부 상품을 둘러싸고 빚어졌던 카드사와 자동차회사 간 갈등이 대표적이다. 여신전문금융업법이 정한 수수료율 체계를 무시한 채 적격비용 이하로 수수료율을 인하해 달라는 자동차회사 요구에 금융당국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다. 시장 가격에 무리하게 개입한 데 따른 결과였다. 카드회사 내부에선 여전법을 준수한 카드회사만 ‘닭 쫓던 개’ 신세가 됐다는 푸념이 나오기도 했다.

수수료율을 조정할 여지가 생겼다는 정부 주장에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시장의 가격 결정에 과도하게 개입하면 예측하지 못한 더 큰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카드회사들이 카드론 등 다른 방법으로 수익을 보전하게 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이 된다는 지적을 정부와 정치권은 새겨들어야 한다.

이지훈 금융부 기자 lizi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