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적 무대 기법·영상 활용…'춤의 스토리텔링' 강화
영화 ‘헨젤과 그레텔’ ‘마담 뺑덕’ 등에서 인간의 비틀린 욕망을 그려낸 임필성 감독은 내달 11~13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하는 국립무용단의 ‘적(赤)’을 연출한다. 국립무용단 수석무용수 최진욱(안무), 영화 음악감독 모그(음악), 패션브랜드 ‘푸시버튼’의 디자이너 박승건(의상)과 협업해 만드는 무대다. 임 감독은 “독일의 세계적 안무가 피나 바우슈(1940~2009)에 대한 다큐멘터리 ‘피나’를 보고 무용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며 “내가 만든 영화 ‘남극일기’를 본 최진욱 씨가 연출을 제안해 기꺼이 수락했다”고 말했다.
‘적’은 발이 잘릴 때까지 춤을 멈추지 못한다는 안데르센의 동화 ‘빨간 구두’를 모티브로 만들었다. 춤을 출 수 없는 환경의 여자 주인공이 남자 춤꾼들을 보고 매력을 느껴 그들을 따라나서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임 감독은 춤에 이야기를 담기 위해 ‘프리퀄(prequel·원작보다 시간이 앞선 이야기를 보여주는 속편)’ 형식으로 작품을 구상했다. “인간의 욕망에는 낭떠러지에 떨어질 것 같은 길이라도 끝까지 가보고 싶은 집념과 무모함이 있잖아요. ‘빨간 구두’는 이런 욕망을 표현하기에 아주 적합한 작품입니다. 줄거리가 자연스럽게 떠올랐어요.”
다큐멘터리 영화 ‘만신’을 만든 박찬경 감독은 내달 5~7일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무대에 오르는 국립현대무용단의 ‘공일차원’에서 시각 연출을 맡았다. 안애순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이 취임 후 두 번째로 선보이는 신작인 공일차원은 폭력과 성적 욕망, 병적인 노동윤리 등에 시달리던 현대인들이 컴퓨터의 가상세계에 불려 나오며 영웅을 호출한다는 내용이다. 박 감독은 “영웅 같은 존재가 등장하고 구원의 메시지를 전한다는 점에서 그동안 ‘만신’ 등에서 했던 작업과 다르지 않다”며 “그런 면에서 재미있게 연출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그는 “가상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거대한 우주선같이 무대를 꾸밀 예정”이라며 “실사 영상과 애니메이션 영상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화, 홍련’ ‘달콤한 인생’ 등을 만든 김지운 감독은 오는 11월 공연할 예정인 국립현대무용단의 ‘어린 왕자’를 연출한다. 김 감독은 “안애순 예술감독이 구상하고 있는 판타지를 무대로 옮기는 작업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생텍쥐페리 원작 소설의 기본 줄거리는 그대로 가져올 생각이다. 그는 “똑똑한 어른들의 세상은 천국이 돼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현실에서 어린왕자는 어떤 울림으로 다가왔다”며 “그 울림을 무대화하고 싶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무용, 연극 등 무대 공연을 연출하는 영화감독이 많지만 국내에선 장르 간 ‘폐쇄적 구조’로 인해 협업이 활발하지 않았다. 김 감독은 영화감독의 무용계 진출을 어떻게 생각할까.
“오지랖 넓은 영화감독에게 무용은 늘 도전하고 싶은 장르입니다. 인간의 몸을 가장 아름답고 강하게 표현하는 사람들과의 작업은 매력적이죠. 다리 품을 팔아서라도 계속 (무용)작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