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 밀집한 강남·서초
착수금 받아 잠적…피해 잇따라
중기청, 전문엔젤 25명 명단 공개
초기 벤처기업 대표 A씨는 최근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B씨로부터 투자금 2억원을 유치해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전문엔젤투자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B씨는 “전문엔젤이 선(先)투자한 기업은 정부로부터 추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며 투자받고 싶으면 착수금 2000만원을 달라고 했다. A씨는 찜찜한 기분이 들었지만 운영자금이 급했던 터라 돈을 건넸다. 하지만 B씨는 전문엔젤이 아니었고, 착수금을 받은 뒤 잠적했다.
15일 벤처투자업계에 따르면 ‘전문엔젤투자자’를 사칭해 벤처기업으로부터 돈을 뜯어내는 신종(新種) 사기가 발생,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섰다. 최근 서울 강남구, 서초구 등 벤처기업 밀집지역에 투자금 유치 명목으로 착수금을 요구하는 불법 투자 브로커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얘기가 쏟아지고 있다. 이들은 설립 3년 이하의 초기 기업을 주요 범행 대상으로 노리고 있다.
불법 브로커들이 공통적으로 사칭하고 있는 게 바로 전문엔젤이다. 전문엔젤은 정부가 초기 벤처기업에 투자 및 멘토링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만든 개념이다. 지난 3년간 초기 기업에 1억원 이상(2개) 투자한 경력이 있는 엔젤투자자 중 정부의 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한 사람에게 중소기업청이 심사해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전문엔젤 사칭 사기가 등장한 배경에는 전문엔젤투자자에게만 부여하는 정부의 ‘특전’이 있다. 전문엔젤이 투자한 기업은 △정부가 운용하는 엔젤매칭펀드가 (심사를 통해) 추가 투자를 해주고 △정부로부터 벤처기업 공식 인증을 받을 수 있으며 △최대 2억원까지 연구개발(R&D)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
전문엔젤을 사칭한 신종 사기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정부가 예방책 마련에 나섰다. 우선 중소기업청과 엔젤투자협회는 전문엔젤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명단을 공개했다. 엔젤투자지원센터 홈페이지(www.kban.or.kr)에 접속하면 전문엔젤투자자 25명의 명단과 생년월일, 전문엔젤 유효기간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중소기업청은 하위기관인 한국벤처투자와 엔젤투자지원센터에 각각 ‘전문엔젤 사칭 브로커 신고센터’를 설치했다.
중소기업청 관계자는 “전문엔젤은 순수하게 벤처기업의 성장성을 보고 투자하는 투자자로, 해당 기업에 결코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며 “전문엔젤을 사칭해 돈을 요구하는 사례가 발생할 경우, 중소기업청이나 엔젤투자지원센터 등에 신고해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오동혁 기자 otto8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