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성의 ‘사이’.
박훈성의 ‘사이’.
서정적 사실주의 그림으로 유명한 박훈성 숙명여대 교수(54)는 캔버스에 숯가루로 드로잉하고 그 위에 다양한 꽃과 식물의 이미지를 그린다. 서로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은 것들을 소통하게 하고 접목을 꾀해 온 박 교수가 이번엔 진달래를 그 매개 이미지로 선택했다.

오는 27일까지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가상과 현실의 간극’을 주제로 개인전을 여는 그는 “진달래를 소재로 작업했지만 꽃의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현실과 비현실, 자연과 초자연의 대립에서 존재하는 간극, 즉 ‘사이(between)’에서 일어나는 감성적 변화를 보여주기 위한 오브제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는 진달래를 차지게 묘사한 근작 ‘사이’ 시리즈 20여점을 내놓았다.

널찍한 화면에는 진달래가 딱 한 송이 그려져 있다. 강약과 속도감이 묻어나는 자유분방한 운필로 채운 진달래 이미지는 사진보다 정교하다.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만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진달래의 미감을 뛰어난 솜씨로 묘사했다. 그러나 그의 꽃은 미술계에 유행하는 예쁜 꽃들과는 다르다.

박 교수는 “추상적 공간인 배경과 현실적 공간인 꽃이 서로 충돌하면서 만들어내는 생경하고 이질적인 감성을 표현했다”며 “사물 자체보다 실제와 이미지, 배경과 주제, 드로잉과 페인팅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차이에 주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작품에선 화려함보다는 질박함, 드러내려 하기보다는 안으로 침묵하는 원숙함이 느껴진다. 마치 눈에 파묻힌 산골 마을처럼 사물의 윤곽이 뚜렷한 박 교수의 그림 속에는 꽃 이미지와 선들이 서로 공존 관계를 일러주듯 오롯하게 살아있다.

그는 “남산 인왕산을 자주 산책하는데 산길을 따라 걷다 보면 나뭇잎 풀잎 돌 집 등이 영롱하게 빛을 발한다”며 “거기에서 본 풍경을 마음속에 채집했다가 화실로 돌아와 붓으로 버무린다”고 설명했다. 캔버스 안에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자연을 넣고 반복적으로 붓질하면 모든 사람이 갈망하는 ‘소통의 다리’가 만들어진다는 설명이다. 화가를 중매쟁이에 비유하는 박 교수는 “그리는 것은 모든 관계의 틈새를 이어주는 것”이라며 “화가가 색깔을 버무린 화면에 관람객이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잠시 쉬어가면 좋겠다. 그게 그림의 힘이자 가치”라고 강조했다.

홍익대 미대를 나와 독일 슈투트가르트국립조형예술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중앙미술대전 동아미술제 MBC미술대전 등에서 수상했다. (02)732-3558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