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치권이 정보기술(IT)·생명기술(BT) 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지식재산권 관련 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는 ‘특허 박스(patent box)’ 제도를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미 기업들이 아일랜드 영국 등 세율이 낮은 곳으로 특허권과 생산시설을 이전하는 것을 막고, 자국 내 고급 일자리 창출을 촉진하기 위해서다.

○글로벌 기업 유치 경쟁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 지도부는 최근 IT기업과 제약회사 등이 요구한 특허박스 제도를 법인세 개편안에 포함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6일 보도했다. 미국의 연방정부 법인세율은 현재 35%인데 특허 관련 수익에는 10%의 세율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미 정치권이 세수 감소에도 특허박스 제도를 도입하기로 합의한 것은 장기적으로 미국 내 일자리 창출 등 경제에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클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 상원 금융위원회에서 법인세 개편안을 마련하고 있는 척 슈머 의원(민주당)은 “다른 나라들이 미국 기업의 R&D투자를 유치하려고 노력하는데 우리가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미 기업 가운데 미국 내에서 R&D 투자를 하지만 그 결과물인 특허는 세율이 낮은 해외 자회사 또는 페이퍼컴퍼니에 소유권을 넘기는 곳이 많다. 제약업체 화이자는 특허권뿐 아니라 관련된 제조시설까지 아일랜드에 두고 있다. 이안 리드 화이자 최고경영자는 “미국의 R&D 세제 혜택은 주요 선진국과 신흥국보다 뒤처져 있다”며 “특허박스는 R&D 및 제조업에서 고급 일자리 창출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계 다국적 제약회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은 2013년 영국이 특허박스 제도를 시행한 이후 영국에 공장을 신설하고 해외에 보유하고 있던 여러 특허권을 영국으로 다시 가져왔다.

○한국은 아직 검토 단계

특허박스 제도는 1973년 아일랜드가 처음 시행했다. 2000년대 들어 국가 간 기업 유치 경쟁이 심해지면서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가 경쟁적으로 도입했다. 특허박스의 적용 세율은 영국 10%(법인세 23%), 프랑스 15%(법인세 33%), 벨기에 6.8%(법인세 34%) 등으로 평균적으로 일반 법인세율의 절반 이하다.

전문가들은 미 의회가 초당파적으로 특허박스 제도 도입에 합의했더라도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특정 상품 및 서비스의 판매이익에서 지식재산권에 의해 산출된 이익을 평가하는 기준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은 중소·중견기업을 대상으로 특허 등의 기술을 이전해 받은 수익에 대해 세금을 감면하는 ‘좁은 의미’의 특허박스 제도를 시행 중이다. 대기업 등에서 특허 관련 제품까지 포함한 전면적인 특허박스 제도 시행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세수 감소와 특허에서 창출된 이익을 평가하기 어렵다는 이유 등으로 아직 ‘검토 단계’에 머물고 있다.

■ 특허박스

patent box. 기업의 전체 순이익 가운데 지식재산권(IP)에 의해 창출된 부분에 대해서는 일반 법인세보다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제도다. 기업의 연구개발(R&D) 촉진을 위해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이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김태훈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