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3월29일 중국 출장을 마치고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국내외 출장을 수행원 없이 혼자 다닐 때가 많다. 한경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3월29일 중국 출장을 마치고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국내외 출장을 수행원 없이 혼자 다닐 때가 많다. 한경DB
지난 1년간 삼성그룹의 실질적인 리더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었다. 그는 작년 5월10일부터 병원에 입원한 이건희 삼성 회장을 대신해 삼성을 이끌었다. 요란하지는 않았지만, 그만의 경영 스타일을 삼성에 접목했다. 그 결과 삼성은 과거보다 훨씬 개방적이고 유연해졌으며 의사결정 속도도 빨라졌다는 평가를 재계로부터 받고 있다. ‘이재용 체제’가 안착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디테일 중시하고 외부 기술에 개방적

이 부회장은 디테일(세부사항)에 강하다는 게 삼성 내부 평가다. 삼성 내에선 “이 부회장이 보기보다 집요하고 섬세하다. ‘오너가 저 정도까지 관여하나’ 싶을 만큼 실무에 깊숙이 개입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부친인 이 회장이 큰 틀에서 방향만 제시하는 ‘화두경영’을 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 부회장이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핵심 경영철학은 ‘경청’과 ‘삼고초려’라는 게 삼성 내부의 전언이다. 이 중 남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경청은 이 부회장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분명히 드러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의 한 고위 임원은 “이 부회장은 실무자 의견을 충분히 듣고 궁금한 게 있으면 계속 질문해 사안의 본질을 이해한 뒤 결정을 내리는 스타일”이라고 전했다. 통찰력보다는 합리적 의사 결정을 중시한다는 의미다.

디테일 경영·경청 리더십…이재용의 삼성, 빠르고 유연해졌다
이 부회장은 여기에 자신만의 강점을 더해 삼성을 이끌고 있다. 두터운 글로벌 인맥이 그런 장점 중 하나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피터 틸 페이팔 창업자,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등 해외 정·재계 인사를 잇달아 만나 친분을 쌓았다. 국내 CEO 중 해외 거물들을 이렇게 많이 만난 CEO는 이 부회장뿐이다. 이 부회장은 이런 네트워크를 활용해 삼성의 미래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은 물론 애플, MS와의 특허 분쟁을 매듭짓는 ‘해결사’ 역할도 해냈다.

외부 기술에 개방적이고 유연한 자세도 이 부회장이 지닌 강점이다. ‘이재용 체제’에서 삼성전자가 인수한 해외 기업만 미국 스마트싱스, 미국 루프페이, 캐나다 프린터온 등 8개에 이른다. 대부분 사물인터넷(IoT)이나 기업 간 거래(B2B) 등 삼성의 미래 비즈니스와 직결된 업체들이다.

이 부회장은 작년 11월에는 삼성테크윈, 삼성종합화학 등 석유화학·방위산업 부문을 한화에 매각하며 과감한 결단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삼성 관계자는 “과거처럼 문어발식 경영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게 이 부회장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배구조 개선에도 관심이 많다. 2013년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삼성의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가 사회적으로 비판받자 이 부회장은 ‘비정상의 정상화’ 차원에서 순환출자를 정리하기로 마음먹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삼성은 계열사 지분 매각 등을 통해 순환출자 고리를 30개에서 10개로 줄였고 남은 고리도 단계적으로 모두 정리할 방침이다.

○수행원 없이 나홀로 출장

이 부회장은 국내외 출장을 수행원 없이 혼자 다닐 때가 많다. 사장단이나 임원이 동행할 때는 대부분 업무상 필요 때문이다. 전용기가 있지만 대개 일반 여객기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작년 9월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 때는 KTX를 이용했다. 삼성 관계자는 “당시 열차 안에서 이 부회장을 알아본 승객들의 사진 촬영 요구에도 흔쾌히 응할 만큼 소탈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임직원들과 카카오톡으로 의견을 주고받기도 한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위기를 겪기도 했다. 2013년 3분기 10조원을 넘었던 삼성전자 영업이익이 작년 3분기 4조원대 초반으로 떨어지면서다. 올 1분기 영업이익을 6조원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리며 경영 능력을 어느 정도 인정받기는 했다.

하지만 부친이 키운 사업을 한 단계 끌어올려야 한다는 부담은 여전하다. 이 부회장은 평소 “(이건희) 회장님이 키운 회사를 단지 유지만 해선 안 된다는 게 가장 큰 스트레스”라는 말을 자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이 B2B, 바이오, 금융 등 신사업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사회평론가 복거일 씨는 지난해 9월 삼성 사장단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이 부회장이 (자신만의) 꿈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꿈을 좇는 과정에서 실수와 실패가 있더라도 이해받고 넘어지더라도 덜 아프게 넘어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