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전주로 가는 500조원
마켓인사이트 4월30일 오후 3시20분

국민연금공단이 공공기관의 혁신도시 이전 프로그램에 따라 1일부터 전북 전주로 이사를 시작한다. 전산센터가 먼저 움직이고 공단본부가 이동한 뒤 마지막에 기금운용본부가 옮기는 순서다. 국민연금은 대규모 이사를 앞두고 징수 관리 등의 업무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는 판단에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기금운용 전문인력 이탈을 막기 위해 바짝 신경 쓰고 있다.

○“500조원이 온다” 들뜬 전주

전주에 들어선 국민연금공단 사옥.
전주에 들어선 국민연금공단 사옥.
국민연금은 1~5일 정보통신기술(ICT)센터 전산장비를 전북 전주·완주혁신도시로 옮긴다. 총 500조원에 육박하는 기금의 징수 및 관리를 담당하는 핵심 장비로 30대의 무진동차량이 동원된다. 이 비용만 32억원이 든다. 국민연금 홈페이지 관련 업무는 잠정 중단된다. 전산장비 구축이 완료되는 이달 말부터는 국민연금공단 본사 600여명의 직원들이 차례로 이사한다. 기금운용본부는 내년에 옮긴다. 전주 국민연금 본사 건물은 입주를 앞두고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전주는 “500조원이 온다”며 들떠 있다. 시내 곳곳에 글로벌 금융도시로 거듭나겠다는 포부를 담은 현수막이 걸렸다. 입주 시점에 맞춰 덕진동 종합경기장 사거리에는 국민연금 이전을 환영하는 홍보 선전탑을 세우고, 시내버스들도 국민연금 앞을 지나도록 노선을 바꿀 예정이다.

국내 최대 ‘큰손’의 이주로 전주에 은행, 증권사, 자산운용사 등이 모이는 ‘금융타운’이 형성될 것이라는 기대도 고조되고 있다. 호남권 금융회사 중에서는 JB자산운용이 본사를 전주로 이전했다.

○“핵심인력 이탈 막아라” 비상

하지만 국민연금 내부에서는 여전히 우려가 크다. 국민연금을 찾는 해외 투자기관이 줄면서 글로벌 정보 교류, 공동 투자 등에서 불리한 여건에 처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여기에 인력 관리의 어려움도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 전주 이전이 가시화되면서 기금운용본부 내 운용역들의 이직 사례도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 핵심 투자조직인 해외대체실의 양대 축이라고 할 수 있는 부동산·사모펀드(PEF) 담당 팀장이 최근 연이어 국민연금을 떠났다. 기금운용본부의 여성 인력이 4분의 1에 달한다는 점도 부담이다. 가족을 떠나 홀로 내려가려는 사람이 적다 보니 자칫 향후 1년 사이에 대규모 인력 이탈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다.

국민연금은 핵심인력을 붙잡아 둘 유인책을 찾는 데 골몰하고 있다. 우선 급여 수준을 큰 폭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기획재정부 등과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 4일 근무체제도 검토하고 있다. 탄력근무제를 적용해 서울에 자택이 있는 직원은 목요일 저녁에 상경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전주 지역 중·고교에 국민연금 임직원 자녀의 특례 입학이 가능하도록 교육청과 협의하고 있다. 해외 사무소에도 현지 채용보다는 국내 직원의 순환근무를 통해 해외 주재 기회를 확대하기로 했다.

국민연금의 출자를 받기 위해 평소 ‘얼굴도장’을 찍어 둬야 하는 국내외 운용사들도 착잡하긴 마찬가지다. “전주시(국민연금)를 찍고 세종시(우정사업본부)를 거쳐 올라오는 단체 투어 팀을 만들어야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사무실 곳곳에서 짐 정리가 시작되면서 직원들이 이전을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며 “기금운용본부의 최종 이전까지 앞으로 1년여간 운용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고경봉/좌동욱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