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산업개발은 '면세점 경험', 호텔신라는 '입지' 얻어

범 현대가와 삼성가의 2·3세 경영인들이 불황에 허덕이는 유통업계의 돌파구로 꼽히고 있는 면세점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전격적으로 손을 잡았다.

현대산업개발과 호텔신라는 12일 합작법인 'HDC신라면세점㈜'을 설립해 국내 최대 규모의 서울시내 면세점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합작 면세점의 후보지는 현재 현대산업개발이 운영하는 용산 아이파크몰로 결정됐다.

호텔신라와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번 합작 사업은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직접 주도했다.

정 회장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넷째 동생인 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의 장남이며, 이 사장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녀다.

정 회장은 서울시내 면세점 유치전 도전을 선언한 지난 1월 12일 기자간담회에서 "필요하다면 다른 업체와 파트너로서 제휴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용산 아이파크몰의 입지 등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면세점을 운영해본 경험이 없는 현대산업개발로서는 '면세점 노하우'가 절실하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6일 관세청이 발표한 서울·제주시내 추가 면세점 특허심사 배점을 보면, '관리역량'(250점)과 '업의 지속가능성 및 재무건정성 등 경영능력'(300점)의 비중이 가장 크다.

이에 따라 현대산업개발은 국내외 면세점 운영업체들과 활발하게 접촉을 벌여왔고, 마침내 3월 초 호텔신라 실무진과의 본격 합작 논의에 들어갔다.

이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지난달 말쯤 아이파크몰 내 정 회장 집무실에서 정 회장과 이 사장이 직접 만나 협상을 마무리지었다.

호텔신라 관계자는 "제의는 현대산업개발쪽에서 먼저 했지만, 사실 현대산업개발이 면세점 진출 의사를 밝힌 시점부터 우리(호텔신라)도 손잡으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 파트너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호텔신라가 가장 매력을 느낀 것은 현대산업개발 용산 아이파크몰의 입지 조건이다.

현재 서울시내 면세점은 대부분 강북 시내 중심지에 몰려있어 주차 공간 등의 측면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호텔신라 역시 현재 운영하는 서울 장충동 면세점을 확장하기도 마땅치 않은 형편이다.

이에 비해 아이파크몰은 대형버스 100대가 주차할 수 있는 옥외주차장을 갖춘데다, 관광특구인 이태원과 용산공원·국립중앙박물관·남산공원 등과도 가깝다.

강남과 강북 어느 쪽에서도 접근하기가 비교적 쉽고, 최근 광주까지 뚫린 호남선KTX, 지하철 1·4호선, ITX, 경의중앙선, 공항철도(예정), 신분당선(예정) 등도 지난다.

호텔신라 관계자는 "우리로서는 합작을 통해 아이파크몰이라는 최상의 입지를 얻었다"며 "현재 용산 전자상가가 다소 침체된 상태인데, 일본 도쿄의 아키하바라가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 특수로 살아난 사례와 마찬가지로 면세점이 들어서면 용산 일대가 새로운 관광명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 호텔신라로서는 현대산업개발과의 합작을 통해 기존 서울시내 면세점 운영자들에 쏠린 '독점 논란'에서도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다.

현재 서울시내에서는 6개의 면세점이 있는데, 운영 주체별로 나눠보면 ▲ 롯데 3곳 ▲ 신라 1곳 ▲ 워커힐 1곳 ▲ 동화 1곳 등이다.

더구나 호텔신라는 지난 2월 끝난 인천공항면세점·제주시내면세점 '대전'에서 상대적으로 롯데에게 밀려 입지가 좁아진만큼 서울시내 추가 면세점 유치가 더욱 절실한 상황이었다.

많은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해줄 수 있는 현대산업개발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기자 shk99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