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유가가 낳은 통계 착시…불황형 흑자를 보는 두가지 시선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한국은행이 한 해 동안 발표하는 경제통계는 131건(2015년 기준). 2~3일마다 나오는 새 숫자들은 경제 판단의 단초다. 그런데 요즘 기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때가 많다. 소위 ‘야마(큰 주제라는 뜻의 은어)’를 잡기 혼란스러워서다.
한은이 지난 2일 발표한 경상수지를 보자. 36개월째 경상 흑자는 대단한 기록이다. 하지만 2월 상품 수출은 406억달러로 전년 동월보다 15.4% 감소했고, 수입은 332억7000만달러로 21.9% 급감했다. 기자들은 ‘불황형 흑자’라고 썼다. 국민들이 돈을 안 써서 수입이 줄어들었을 뿐이라는 해석이다.
수출금액이 큰 폭의 마이너스인 것은 더 문제였다. 수출입 금액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작년에도 크게 낮아졌다. 성장동력인 수출에 이상이 생겼다는 신호였다.
이 같은 비관론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한은의 한 통계 전문가는 “작년 하반기 이후 국제유가가 30% 넘게 급락하다 보니 전년 동기 대비 지표가 급변했다”며 “숫자만 보면 경기가 실제보다 나빠 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같은 양을 수출해도 제품 가격이 급락하면 수출 실적이 안 좋게 나온다. 게다가 한국은 원자재 수입 비중이 높고, 그 가공품도 많이 수출하기에 유가에 민감하다. 북미 셰일가스 생산 등 ‘공급 요인’으로 인한 저유가가 여러 지표에 ‘착시’를 가져왔다는 주장이다.
한은은 관세청 자료 등을 토대로 수출입 변화를 반영한 금액지수, 물량지수를 매월 발표한다. 이에 따르면 2월 수출물량은 전년 동월 대비 2.3% 감소했다. 노충식 국제수지팀장은 “올해는 설 연휴가 2월에 몰린 영향이 크다”며 “하루 평균으로 따지면 전년 동월보다 수출물량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설 연휴 효과를 제거하려면 1~2월을 합쳐 보면 된다. 올 1~2월 수출 금액은 전년 동월보다 7.7%, 수입 금액은 15.7% 감소했다. 반면 물량은 각각 2.0%와 2.9% 늘어났다. 물량으로 보면 수출전선에 큰 문제가 없다.
불황형 흑자에 대한 반론도 있다. 노 팀장은 “한국은 유가가 내리면 경상흑자가 확대되는 게 공식”이라고 설명했다. 원자재값이 내렸을 때 이를 가공한 제품 가격은 시차를 두고 떨어진다. 원자재를 수입하고 가공품을 수출하는 경제구조에선 이 시차 동안 흑자폭이 커지게 된다.
국제유가 등 가격변수는 여러 통계에 영향을 미친다.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최근경제동향(그린북)에 따르면 지난 1월 백화점과 대형마트 판매가 11%와 18.5% 급감했다. 이는 매출을 따진 것으로 판매 물량만 떼서 보긴 어렵다. 비슷한 물량을 팔아도 제품값이 내렸거나 할인판매가 활발했다면 매출이 감소할 수 있다. 예컨대 가계가 작년처럼 옷 세 벌을 사되 요즘 유행하는 ‘패스트패션’으로 싸게 구매했다면 소비 위축이라고 봐야 할까.
한은 관계자는 “저유가 자체는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요인”이라며 “제품 가격이 떨어지면 같은 소득으로 소비할 여력이 커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소비 촉진 효과는 몇 분기 이후 천천히 나타난다.
이 과정에서 경제 진단에 오차가 생길 가능성은 커진다. 곽현수 신한금융투자 연구위원은 “저유가에 따른 지표 왜곡은 2분기쯤 정상화할 것”이라고 봤다. 경제주체들이 현재 유가에 익숙해지면 점차 경기지표도 나아질 것이라는 의미다.
‘저유가 착시론’에 대한 강력한 반론도 있다. 가격 변화를 애초에 무시해선 안 된다는 논리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거시경제는 가치의 총량, 즉 ‘가격×물량’의 영향을 받는다”며 “가격은 곧 수요를 반영하므로 물량보다 더 심각하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물량은 시류를, 가격은 수요 변화를 더 많이 반영한다. 판매 가격이 떨어졌다면 ‘유통업체가 왜 할인을 하는가’라는 질문부터 던져야 한다는 의미다. 물가와 소득이 오르는 경기 선순환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야마 잡기’가 계속 어려울 듯하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
한은이 지난 2일 발표한 경상수지를 보자. 36개월째 경상 흑자는 대단한 기록이다. 하지만 2월 상품 수출은 406억달러로 전년 동월보다 15.4% 감소했고, 수입은 332억7000만달러로 21.9% 급감했다. 기자들은 ‘불황형 흑자’라고 썼다. 국민들이 돈을 안 써서 수입이 줄어들었을 뿐이라는 해석이다.
수출금액이 큰 폭의 마이너스인 것은 더 문제였다. 수출입 금액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작년에도 크게 낮아졌다. 성장동력인 수출에 이상이 생겼다는 신호였다.
이 같은 비관론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한은의 한 통계 전문가는 “작년 하반기 이후 국제유가가 30% 넘게 급락하다 보니 전년 동기 대비 지표가 급변했다”며 “숫자만 보면 경기가 실제보다 나빠 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같은 양을 수출해도 제품 가격이 급락하면 수출 실적이 안 좋게 나온다. 게다가 한국은 원자재 수입 비중이 높고, 그 가공품도 많이 수출하기에 유가에 민감하다. 북미 셰일가스 생산 등 ‘공급 요인’으로 인한 저유가가 여러 지표에 ‘착시’를 가져왔다는 주장이다.
한은은 관세청 자료 등을 토대로 수출입 변화를 반영한 금액지수, 물량지수를 매월 발표한다. 이에 따르면 2월 수출물량은 전년 동월 대비 2.3% 감소했다. 노충식 국제수지팀장은 “올해는 설 연휴가 2월에 몰린 영향이 크다”며 “하루 평균으로 따지면 전년 동월보다 수출물량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설 연휴 효과를 제거하려면 1~2월을 합쳐 보면 된다. 올 1~2월 수출 금액은 전년 동월보다 7.7%, 수입 금액은 15.7% 감소했다. 반면 물량은 각각 2.0%와 2.9% 늘어났다. 물량으로 보면 수출전선에 큰 문제가 없다.
불황형 흑자에 대한 반론도 있다. 노 팀장은 “한국은 유가가 내리면 경상흑자가 확대되는 게 공식”이라고 설명했다. 원자재값이 내렸을 때 이를 가공한 제품 가격은 시차를 두고 떨어진다. 원자재를 수입하고 가공품을 수출하는 경제구조에선 이 시차 동안 흑자폭이 커지게 된다.
국제유가 등 가격변수는 여러 통계에 영향을 미친다.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최근경제동향(그린북)에 따르면 지난 1월 백화점과 대형마트 판매가 11%와 18.5% 급감했다. 이는 매출을 따진 것으로 판매 물량만 떼서 보긴 어렵다. 비슷한 물량을 팔아도 제품값이 내렸거나 할인판매가 활발했다면 매출이 감소할 수 있다. 예컨대 가계가 작년처럼 옷 세 벌을 사되 요즘 유행하는 ‘패스트패션’으로 싸게 구매했다면 소비 위축이라고 봐야 할까.
한은 관계자는 “저유가 자체는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요인”이라며 “제품 가격이 떨어지면 같은 소득으로 소비할 여력이 커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소비 촉진 효과는 몇 분기 이후 천천히 나타난다.
이 과정에서 경제 진단에 오차가 생길 가능성은 커진다. 곽현수 신한금융투자 연구위원은 “저유가에 따른 지표 왜곡은 2분기쯤 정상화할 것”이라고 봤다. 경제주체들이 현재 유가에 익숙해지면 점차 경기지표도 나아질 것이라는 의미다.
‘저유가 착시론’에 대한 강력한 반론도 있다. 가격 변화를 애초에 무시해선 안 된다는 논리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거시경제는 가치의 총량, 즉 ‘가격×물량’의 영향을 받는다”며 “가격은 곧 수요를 반영하므로 물량보다 더 심각하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물량은 시류를, 가격은 수요 변화를 더 많이 반영한다. 판매 가격이 떨어졌다면 ‘유통업체가 왜 할인을 하는가’라는 질문부터 던져야 한다는 의미다. 물가와 소득이 오르는 경기 선순환이 확인되기 전까지는 ‘야마 잡기’가 계속 어려울 듯하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