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세대에겐 축복인 집값 상승은 자식 세대에겐 고스란히 고통으로 전가되기 마련이다.
모 세대에겐 축복인 집값 상승은 자식 세대에겐 고스란히 고통으로 전가되기 마련이다.
올해 77세의 김용희(가명) 씨는 지난해 초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의 99㎡(30평)대 아파트를 4억4000만 원에 팔았다. 김 씨가 경기도 일산신도시의 66㎡(20평)대 아파트로 거처를 옮긴 것은 막내 아들의 결혼비용 마련 때문이었다. 집을 파는 과정도 쉽지는 않았다. 이곳저곳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찾아 집을 내놓았지만 보러 오는 사람 자체가 적었다. 설상가상으로 집값이 하락세에 접어들었다는 뉴스라도 들리면 마음 졸이기가 일쑤였다. 아들의 결혼비용도 문제지만 평생을 바쳐 얻은 재산의 가치가 떨어져 간다는 사실에 깊은 허무함마저 들었다.

‘폭락’과 ‘상승’의 기대감 섞여

신혼집을 마련해야 했던 아들 김수용(가명·33) 씨는 어땠을까. 김 씨가 주택 마련 비용으로 마련한 돈은 부모님이 지원해 준 1억 원과 자기 돈 1억을 더한 2억 원이었다. 직장과 가까운 분당신도시에서 살림을 시작할 계획이었던 그는 집을 보러 다니는 내내 좌절감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 내 집 마련은커녕 2억 원으로는 웬만한 50㎡(15평) 규모의 아파트 전세도 구하기 힘들었다. 김 씨는 결국 인근 성남의 빌라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그나마 2억 원이라도 손에 쥐고 있는 게 다행이었다. 부모의 도움을 받지 못한 몇몇 친구들에게선 “결혼은 일찌감치 포기했다”는 말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집 한 채를 둔 아버지와 새로 집을 구해야 하는 아들. 똑같은 부동산이지만 둘 사이의 간극은 너무나 크다. ‘집값이 떨어질 것’이란 뉴스에 노발대발하는 아버지와 ‘집값이 폭락해야 나 같은 사람도 산다’는 아들이 한집에 살고 있는 셈이다.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로 상징되는 부동산은 단순한 ‘주거’의 의미를 뛰어넘은 지 오래다.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가구당 평균 자산은 약 3억3000만 원으로 추산된다. 이 중 비금융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65.9%다. 순자산을 기준으로 하면 78.4%까지 뛰어오른다. 3억3000만 원 중 2억5000만 원이 부동산, 단적으로 말하면 아파트에 묶여 있다는 의미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전체 가구 중 부동산 자산을 보유한 가구가 80%이고 이 중 거주 주택의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66%에 달한다. ‘가진 것이라곤 집 한 채가 전부’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구조다.

집을 가진 부모 세대로선 자산 가치(집값)의 유지가 절대 과제다. 특히 보유 자산의 대부분을 부동산이 차지하고 있는 실정에선 더욱 그렇다. 반대로 자식 세대에겐 집값 상승이 미래의 희망을 앗아가는 멍에와 같다. 결혼·연애·출산을 포기한 ‘삼포 세대’의 등장은 상당 부분이 감당하기 어려운 주택 마련 비용에서 야기된다.

현재 23~36세에 해당하는 에코 세대의 월평균 수입은 262만 원이다. 부동산 정보 업체 부동산써브가 조사한 1월 첫 주 기준 전국의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2억8664만 원이다. 2030세대가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두 저축한다고 하더라도 아파트 한 채를 구입하려면 9년이 넘게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서울 지역 아파트 평균 가격인 5억3086만 원(지난해 말 기준)으로 계산하면 무려 16년을 훌쩍 넘긴다. 사실상 월급만으로는 주택 구입이 거의 불가능하다.

집 하나를 두고 확고하게 갈린 부모와 자식 세대의 처지는 세대 간 갈등 양상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인터넷의 부동산 관련 뉴스나 커뮤니티에 달린 댓글이 단적인 예다. 희생과 열정으로 오늘날의 부를 이룬 부모 세대의 자부심,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삼포 세대의 절망이 서로를 힐난하기 바쁘다. 정부의 정책도 두 세대 모두를 만족시키지는 못한다. 노후 자금이라곤 집 한 채뿐인 부모들에게 집값 상승만 바라보며 자산 조정에 나서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나, 가진 것 없는 자식들에게 빚으로 집을 사게 하는 정책은 결국 ‘모 아니면 도’ 식의 위험한 발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2030 월급 16년치가 서울 아파트 한 채

고공 행진하던 주택 가격은 2006년에 정점을 찍었다. 2008년부터 미국발 금융 위기를 계기로 내림세로 돌아섰지만 속도는 여전히 더디다. 치솟는 집값은 양날의 검과 같았다. 자산(주택)을 보유한 이에겐 자산 가치의 상승을, 자산을 확보하려는 이에겐 기회 상실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부동산 시장의 정상화와 ‘서민 주거 안정’을 명분으로 각종 부동산 정책들을 쏟아 내고 있다.

서민 주거 안정이라면 내 집 마련이 쉽도록 집값을 떨어뜨리는 정책일 것 같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MB 정부 이후 지금까지 쏟아져 나온 각종 정책들은 모두 집값 상승을 유도하는 것들뿐이다. 지난해 주택담보대출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완화한 게 대표적이다. LTV와 DTI를 각각 70%, 60% 수준으로 확대했는데, 이는 잠재된 매매 수요를 끌어올리겠다는 의도다. 결국 ‘쉽게 빚을 내줄 테니 집을 사라’는 말과 같다.
집값 상승에 아버지 '웃고' 아들 '울고'
주택 가격이 오르거나 최소한 보합세를 유지했을 때 웃는 사람은 누구일까. ‘내 집’, 즉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1955~1963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 이상의 부모 세대다. 2012년 통계청 조사를 보면 베이비붐 세대의 주거 유형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자가’로 전체의 59.6%를 차지했다. 전세(19.1%)·월세(17.9%)와 비교해 내 집을 소유한 비중이 압도적이다. 이들의 자식뻘인 에코 세대(1979~1992년생)는 어떨까. 같은 자료에서 에코 세대의 주거 유형별 비중은 월세가 46.6%로 압도적이다. 전세(31%)까지 합하면 77.6%가 셋방살이다. 이들의 자가 비중은 15.4%에 그친다. 집값을 두고 두 세대의 이해관계가 정반대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어 조금만 거래량이 늘어도 ‘훈풍’ 운운하는 상황까지 간 것도 결국은 두 세대의 갈등 내지는 대치 상황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부모 세대는 집 말고는 재산이 없어 노후 소득을 위해서는 이를 최대한 활용해야 할 처지다. 부모는 집값과 세가 올라야 노후 생활이 가능하고 그 자녀는 그럴수록 생활이 쪼들리고 집 사기가 어려워지는 모순에 빠져 있는 것이다.” 김수현 세종대 도시부동산대학원 교수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이런 세대 전쟁을 세대 연합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방법은 부동산 시장의 연착륙뿐”이라고 말한다.

1970년대부터 2006년에 이르는 고도 성장과 부동산 가격 급등은 이제 없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1년에 80만 명씩 태어나던 베이비붐 시대는 지나고 이제는 국가 경제 위기의 진원으로 인구 감소, 특히 청년층 감소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실정이다. 집값을 떠받쳐줄 사람 자체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은 “부동산 가격이 단기간에 시장에서 원하는 수준까지 떨어지면 충격은 있겠지만 거래가 늘어나면 하우스 푸어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송 소장은 “세상에 공짜 점심이 없듯이 부동산 덕에 쉽게 얻은 성장에 대한 비용을 치러야 할 때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국경제매거진 한경BUSINESS 10007호 제공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