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B, 9일부터 양적완화…월 600억유로 푼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오는 9일부터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회원국의 국채를 매입하는 등 전면적인 양적 완화(QE)를 시작하기로 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사진)는 5일(현지시간) 키프로스의 수도 니코시아에서 열린 ECB의 정례 통화정책회의가 끝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내년 9월까지 월 600억유로 규모의 자산 매입을 진행하겠다”며 “물가 수준이 목표치인 2%대에 도달하거나 근접할 때까지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ECB, 19개월 동안 양적 완화 시행

드라기 총재는 “ECB가 9일부터 유로화 표시 국공채를 유통시장에서 매입하기 시작할 것”이라며 “지난해부터 시행해온 자산유동화증권(ABS)과 커버드본드 매입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그리스 채권은 당분간 매입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차 확인하고, 일반적인 채권 매입 수익률 하한선을 현행 예금금리인 -0.2%로 제시했다.

ECB는 유로존의 국내총생산(GDP)이 올해 1.5%, 내년 1.9%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당초 전망치인 1.0%와 1.5%보다 상향 조정한 것이다. 2017년 성장률 전망치는 2.1%로 제시했다. ECB가 경기 회복의 가장 중요한 지표로 여기는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최근의 유가 하락을 감안해 기존의 0.7%에서 0%로 낮춰 잡았다. 하지만 내년에는 당초의 1.3%에서 1.5%로 끌어올렸고, 2017년에는 1.8%까지 물가상승률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ECB는 이날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현행 연 0.05%로 동결했다. 작년 9월 기준금리를 연 0.15%에서 0.05%로 낮춘 뒤 6개월 연속 동결한 것이다. 하루짜리 예금에 적용되는 예금금리와 한계 대출금리도 각각 -0.20%와 0.30%로 유지했다.

○美·中 기업, 앞다퉈 유럽자금 사냥

ECB, 9일부터 양적완화…월 600억유로 푼다
ECB의 양적 완화로 유로존의 채권 금리가 더욱 내려갈 것으로 전망되면서 미국과 중국 기업이 앞다퉈 유로존에서 자금 조달에 나서고 있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의 벅셔해서웨이도 처음으로 유로화 표시 채권 발행 계획을 내놨다.

벅셔해서웨이는 도이치뱅크와 골드만삭스 등을 주관사로 내세워 30억유로 규모의 유로화 표시 채권 발행에 나선다. 금리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유로존 내 회사채 시장 분위기를 감안하면 연 1%대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조사업체 마르키트에 따르면 3월 초 기준 유로화 표시 회사채의 평균금리는 연 1.07%로 달러화 표시 회사채 평균금리(연 3.66%)보다 크게 낮다. 이 중 투자적격 등급의 유로화 표시 회사채 평균금리는 연 0.90%로 연 1% 이하에 머물러 있다. 위안화 표시 회사채의 평균금리가 연 5% 수준인 중국 등 아시아 기업으로서도 유럽 회사채 시장은 매력적이다.

이에 따라 유로화 표시 회사채를 발행하는 외국 기업이 크게 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딜로직에 따르면 올 들어 이달 4일까지 미국 기업이 발행한 유로화 표시 채권은 266억유로로 2007년 이후 최대였다.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기업 역시 지난달까지 22억9000만달러어치의 유로화 표시 채권을 발행했다. 작년 같은 기간 대비 다섯 배 늘어난 규모다.

신동준 하나대투증권 연구위원은 “ECB의 양적 완화로 풀린 유럽 자금이 한국 원화채권 시장에까지 들어올 것”이라며 “이는 시중금리 하락으로 이어져 국내 기업들의 자금 조달 비용도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동균/노경목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