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기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해 7월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국정원장 임명장을 받은 뒤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병기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해 7월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국정원장 임명장을 받은 뒤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김기춘 전 비서실장 후임 물색에 들어간 것은 한 달 반 전이다. 지난 1월1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비서실장 교체를 시사한 이후부터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후임 비서실장으로 정책에 밝은 ‘실무형’을 택할지, 아니면 당·청 소통에 강한 ‘정무형’을 낙점할지를 놓고 줄곧 고민을 거듭했다고 한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여기에는 인물난도 한몫했다”고 전했다. 이런 과정에서 당초 예고된 발표 시점이 두 차례나 미뤄지기도 했다. 막판엔 거론되는 후보군만 15명이 넘었다.

박 대통령은 결국 비서실장 교체를 시사한 지 47일 만인 27일 그동안 거론되지 않은 측근 실세인 이병기 국가정보원장을 새 비서실장으로 ‘깜짝 발탁’했다. 현 정부 초기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주일본 대사로 발탁한 데 이어 국정원장으로 임명한 지 1년도 안 돼 다시 비서실장으로 ‘차출’하는 데 따른 부담을 무릅쓰고 ‘정무형’ 측근을 참모로 불러들인 것이다.

일각에선 국정운영에 변화를 주기보다는 정치인 내각에 이어 측근 참모 중심으로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인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청와대 비서실장 이병기] 장고 끝 '측근 실세' 비서실장…박대통령, 쇄신보다 안정에 '무게'
○장고(長考) 끝에 다시 ‘정무형’

청와대와 여권 안팎에서는 후임 인선이 늦어지면서 막판에 ‘실무형’ 인사가 발탁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정책 경험이 있는 여러 인사가 집중 거명된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하지만 여권 내부에서는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경제팀을 중심으로 현정택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이 보강되면서 정책 라인은 충분히 진용이 갖춰진 만큼 정치권과의 관계를 잘 풀어낼 정무형 인사가 새 비서실장에 적임이라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는 “박 대통령도 이를 감안해 막판에 최종 후보자 2명으로 실무형과 정무형을 동시에 올려 놓고 저울질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실무형 후보는 정책 라인과의 호흡 문제, 정치권과 소통이 걸리는 데다 검증 과정에서 하자까지 드러나면서 이병기 실장으로 최종 낙점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신임 실장은 2004년 이후 10년 넘게 박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하고 조언해온 ‘정치적 멘토’나 다름없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실장은 박 대통령이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자문그룹 중 한 명”이라고 말했다.

○당·정·청 관계 변화 오나

이 실장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유승민 원내대표 등 여당 지도부와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와 친분이 두텁다. 내각을 이끄는 이완구 국무총리와 최경환·황우여 부총리와도 소통이 원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만큼 당·정·청을 아우르며 국정운영의 중추 역할을 무난히 해낼 적임자란 평가가 많다.

하지만 최근 ‘비박(비박근혜)계’의 여권 새 지도부 출범을 계기로 국정운영의 무게추가 당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측근 실세 비서실장이 임명돼 새 실장의 보폭에 따라 당·청 관계가 다시 삐걱거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실장이 초대 주일 대사를 마치고 국정원장으로 이동한 지 8개월여 만에 다시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것을 두고 일각에선 인적 쇄신과는 거리가 먼 측근 인사의 ‘돌려막기’란 비판도 제기된다. 국회 원내 활동 경험이 없다는 점에서 야당과의 소통에 약점이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