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냐 인간관계냐…경제학자들이 풀어본 '행복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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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미 기자의 경제 블랙박스
올해 설 연휴는 5일간으로 제법 긴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예년보다 많은 귀성객이 도로와 뱃길을 채웠다고 한다. 가족이나 친지를 만나려는 마음엔 소득 수준과 남녀노소에 차이가 없는 듯하다.
그 마음까지 요즘 경제학자들의 연구 대상에 올랐다. 지난 24~25일 열린 ‘2015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선 ‘관계재가 행복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분석(한재명·류재린·김균)’이란 논문이 발표됐다. ‘우리는 왜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는가’에 대한 답을 경제학자들이 찾아나선 것이다.
관계재(relation goods)란 ‘다른 사람과의 상호 교류에서 나오며 다른 사람과 함께할 때만 즐길 수 있는 재화’로 정의된다. 즉 가족이나 친구, 동료, 친척 등과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는 시장에서 파는 상품처럼 행복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넓은 의미에서 재화다. 모든 사회현상을 경제적 효용의 덧셈 뺄셈으로 보는 경제학답다.
통계청이 전국 2만1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생활시간조사(2009년)’에 따르면,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관계 시간)이 많을수록 행복감이 높았다. 누구든 함께 있으면 그 자체로 더 즐거울 가능성이 높다는 것. 반면 TV 보기나 취미활동 같은 전체 여가 길이는 행복도와 큰 관계가 없었다. 이외에 개인 학습 시간, 기타 시간 등과 비교해도 ‘관계 시간’은 행복도에 가장 큰 영향을 줬다. 관계재와 행복의 강력한 상관관계가 입증되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과 함께할 때 행복도가 높아질까. 가족 외 사람들에게 대가 없이 기여하는 ‘참여봉사 시간’이 행복도를 가장 크게 끌어올렸다. 이웃의 가게를 대신 봐주거나 잔치음식을 하는 것, 나아가 재해지역에서 봉사하거나 부정선거를 감시하는 것까지 모두 여기에 속한다. 그다음으로 큰 행복을 가져오는 것이 가족과 있는 시간, 그다음이 직장동료 등과 나누는 시간이었다.
노동 시간이 길수록, TV 시청을 오래 할수록 행복도는 떨어진다. 이 가운데 노동과 행복의 관계는 조금 복잡하다. 노동 시간이 길면 소득이 늘어나고, 고소득은 그 자체로 높은 만족감을 낳기 때문이다. 자기 집을 가진 사람의 행복도가 세입자보다 대체로 높게 나오는 이유다.
다만 ‘소득이 늘수록 행복해진다’는 경제학의 오랜 전제는 흔들리고 있다. 김균 고려대 교수는 “일정 수준의 소득을 달성한 뒤엔 소득이 행복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게 1970년대에 입증됐다”고 설명했다. 이를 보여준 경제학자 이름을 따 ‘이스털린 역설’로 불린다.
김 교수는 “고소득을 유지하려고 노동 시간을 늘리다 보면 관계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고소득자라도 관계재를 희생하면 더 큰 행복을 누릴 수 없다.
물질적 행복이 전부가 아니라면 성장 우선 정책도 달라져야 할까. 국민소득 3만달러에 이르기도 전에 저성장에 진입한 한국 경제로선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다. 물질적 소득은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관계재의 행복 효과는 고소득 개인보다 저소득 개인에서 더 크게 나타난다. 관계 시간을 똑같이 늘렸을 때 고소득자의 행복도는 저소득자보다 덜 높아진다는 뜻이다. 이는 고소득자일수록 이미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한계효용이 커질 여지가 적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쯤이면 돈과 인간관계 모두 포기할 수 없다는 다소 허망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하긴 행복의 비결에 굳이 복잡한 함수가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월급쟁이들은 가족과의 휴식을 애틋하게 원한다. 불황 속에 손님 한 명이라도 더 받으려고 밤 늦게까지 가게를 지키는 자영업자들도 마찬가지다. 올해 경제 사정이 풀려 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관계를 맺었으면 좋겠다.
김유미 경제부 기자 warmfront@hankyung.com
그 마음까지 요즘 경제학자들의 연구 대상에 올랐다. 지난 24~25일 열린 ‘2015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선 ‘관계재가 행복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분석(한재명·류재린·김균)’이란 논문이 발표됐다. ‘우리는 왜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는가’에 대한 답을 경제학자들이 찾아나선 것이다.
관계재(relation goods)란 ‘다른 사람과의 상호 교류에서 나오며 다른 사람과 함께할 때만 즐길 수 있는 재화’로 정의된다. 즉 가족이나 친구, 동료, 친척 등과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는 시장에서 파는 상품처럼 행복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넓은 의미에서 재화다. 모든 사회현상을 경제적 효용의 덧셈 뺄셈으로 보는 경제학답다.
통계청이 전국 2만1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생활시간조사(2009년)’에 따르면,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관계 시간)이 많을수록 행복감이 높았다. 누구든 함께 있으면 그 자체로 더 즐거울 가능성이 높다는 것. 반면 TV 보기나 취미활동 같은 전체 여가 길이는 행복도와 큰 관계가 없었다. 이외에 개인 학습 시간, 기타 시간 등과 비교해도 ‘관계 시간’은 행복도에 가장 큰 영향을 줬다. 관계재와 행복의 강력한 상관관계가 입증되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과 함께할 때 행복도가 높아질까. 가족 외 사람들에게 대가 없이 기여하는 ‘참여봉사 시간’이 행복도를 가장 크게 끌어올렸다. 이웃의 가게를 대신 봐주거나 잔치음식을 하는 것, 나아가 재해지역에서 봉사하거나 부정선거를 감시하는 것까지 모두 여기에 속한다. 그다음으로 큰 행복을 가져오는 것이 가족과 있는 시간, 그다음이 직장동료 등과 나누는 시간이었다.
노동 시간이 길수록, TV 시청을 오래 할수록 행복도는 떨어진다. 이 가운데 노동과 행복의 관계는 조금 복잡하다. 노동 시간이 길면 소득이 늘어나고, 고소득은 그 자체로 높은 만족감을 낳기 때문이다. 자기 집을 가진 사람의 행복도가 세입자보다 대체로 높게 나오는 이유다.
다만 ‘소득이 늘수록 행복해진다’는 경제학의 오랜 전제는 흔들리고 있다. 김균 고려대 교수는 “일정 수준의 소득을 달성한 뒤엔 소득이 행복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게 1970년대에 입증됐다”고 설명했다. 이를 보여준 경제학자 이름을 따 ‘이스털린 역설’로 불린다.
김 교수는 “고소득을 유지하려고 노동 시간을 늘리다 보면 관계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고소득자라도 관계재를 희생하면 더 큰 행복을 누릴 수 없다.
물질적 행복이 전부가 아니라면 성장 우선 정책도 달라져야 할까. 국민소득 3만달러에 이르기도 전에 저성장에 진입한 한국 경제로선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있다. 물질적 소득은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관계재의 행복 효과는 고소득 개인보다 저소득 개인에서 더 크게 나타난다. 관계 시간을 똑같이 늘렸을 때 고소득자의 행복도는 저소득자보다 덜 높아진다는 뜻이다. 이는 고소득자일수록 이미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한계효용이 커질 여지가 적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쯤이면 돈과 인간관계 모두 포기할 수 없다는 다소 허망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하긴 행복의 비결에 굳이 복잡한 함수가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월급쟁이들은 가족과의 휴식을 애틋하게 원한다. 불황 속에 손님 한 명이라도 더 받으려고 밤 늦게까지 가게를 지키는 자영업자들도 마찬가지다. 올해 경제 사정이 풀려 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관계를 맺었으면 좋겠다.
김유미 경제부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