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많은 권력을 가진 흑인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다. 그렇다면 가장 돈 많은 흑인은 누굴까. 주인공은 오바마 대통령이 있는 미국이나 북아프리카 흑인들이 대거 이주한 유럽도 아닌 나이지리아에 있다. 아프리카 최대 기업집단 당고테그룹을 이끌고 있는 알리코 당고테 회장이다.

포브스 집계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그의 재산은 158억달러로 세계 59위의 부자다. 가장 돈 많은 아프리카인이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석유산업으로 부를 축적한 무함마드 알 아무디(125억달러)를 제치고 가장 부유한 흑인이다.

하지만 당고테 회장은 거부(巨富)이기 이전에 기업인이다. 1977년 창업해 지금은 카메룬과 토고, 가나, 남아프리카공화국, 잠비아 등지에 지사를 보유한 17개 기업을 거느린 거대 기업집단을 일궜다. 아직은 저개발 국가의 기업가로서 기업 활동을 통해 국가에 기여하겠다는 비전도 갖고 있다. 설탕과 밀가루, 직물 등 이른바 ‘삼백(三白)산업’을 기반으로 성장한 이력은 삼성과 삼양 등 한국 대기업들의 초창기를 연상시킨다.

할아버지 돈 빌려 시작한 사업

약 1억8000만명으로 아프리카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이지리아에서 당고테그룹의 물건을 사용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설탕과 소금, 밀가루부터 섬유까지 입고 먹는 생활필수품의 상당 부분을 공급하기 때문이다. 당고테그룹은 석유 정제와 부동산, 통신까지 사업영역을 넓히고 있다.

지금은 거대 기업집단이 됐지만 당고테그룹의 시작은 미미했다. 당고테 회장이 1977년 21세의 나이에 할아버지에게 빌린 2500달러로 출발했기 때문이다. 유복한 이슬람 상인의 집안에서 태어난 당고테 회장은 당시로선 적지 않은 돈을 사업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그는 “할아버지는 맏손자인 나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사업 관련 노하우를 전수해 주는 데 아낌이 없었다”며 “할아버지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부유한 나이지리아 젊은이들이 벤츠 등 고급 승용차를 사는 데 돈을 탕진하는 동안 자기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시멘트와 건설기자재를 수입해 팔기 시작한 당고테 회장은 당시 나이지리아에 불어온 건설붐으로 빠르게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그는 “할아버지는 기반을 잡기 위해 3~4년간 돈을 빌려주겠다고 했지만 불과 6개월 만에 모두 갚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당고테 회장은 이같이 만든 사업자금을 바탕으로 거래물품을 확대해 갔다. 1980년대에는 설탕과 소금, 밀가루에서 시작해 쌀과 물고기, 비료까지 수입했으며 나이지리아에서 나는 면화와 코코아, 후추 등은 수출했다.

제조업을 통한 산업입국의 꿈

1990년대 초 나이지리아가 민주화되고 경제에 대한 여러 규제가 풀리기 시작하자 당고테 회장은 제조업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자신이 수입하던 물품을 나이지리아에서 직접 생산하기로 한 것이다.

우선 설탕 생산부터 시작했다. 나이지리아 내 설탕산업이 미미하던 시절이었지만 당고테 회장은 설탕공장을 설립해 아프리카 1위, 세계 3위의 설탕 생산시설을 갖추는 데 성공했다. 당고테그룹은 연 80만t의 설탕을 생산하며 나이지리아 내 설탕 수요의 70%를 공급하고 있다.

나이지리아섬유를 인수해 만든 당고테 섬유는 하루 12만m의 섬유를 뽑아내며 나이지리아 최대 섬유회사가 됐다. 면화에서 실을 뽑아내는 공장도 별도로 지었으며 소금공장도 보유하고 있다. 2012년에는 나이지리아항만공사로부터 남는 땅을 임대해 밀가루 공장을 짓기도 했다. 물고기를 잡기 위해 저인망어선 3척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자신이 수입하던 물품 대부분을 국산화하는 데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당고테그룹은 물류회사로 거듭났다. 공장에 원료를 조달하고 생산품을 운송하기 위해 600대의 트럭을 갖추게 된 것이다. 당고테 자동차리스는 에어컨이 장착된 100대가량의 버스를 보유하고 있으며, 나이지리아중앙은행 등 정부 기관의 셔틀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도 하고 있다.

한국의 대기업이 그랬듯 생활필수품의 국산화가 어느 정도 진행된 이후에는 신사업에 도전하고 있다. 2013년에는 90억달러의 투자금을 국내외에서 조성해 석유·화학·비료의 복합 생산단지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10억달러를 투자해 현대화된 쌀 생산 농지를 갖추겠다고 밝혔다. 통신산업 진출도 노리고 있다. 2009년 1만4000㎞의 광케이블을 나이지리아 전역에 매설해 그해 나이지리아에서 가장 큰 토목사업으로 꼽히기도 했다.

그는 기회가 날 때마다 자신의 사업을 통해 나이지리아를 살찌우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그는 “나이지리아에서 번 돈을 나이지리아에 다시 투자하는 것만큼 나이지리아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은 없다”며 “만약 당신이 50억달러를 준다면 나는 그 모두를 여기 나이지리아에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신들은 “당고테 회장의 애국심이 그룹을 지금과 같은 규모로 키운 중요한 원동력”이라고 분석했다.

복지재단을 통한 사회기여도

당고테그룹은 나이지리아 전역에서 1만1000명을 고용하고 있다. 일회성 사업 등에 간접 고용된 인원까지 합하면 2만2000명이다. 고학력자는 물론 저학력자에게도 운송이나 포장 등 업무를 제공하고 있다. 포보스는 “중·고교를 중퇴한 청년들에게 당고테그룹이 일자리를 주면서 범죄율을 낮추는 효과도 있다”고 전했다.

사회기여 활동도 활발하다. 당고테 회장은 복지재단을 통해 매년 수백만달러를 홍수 예방과 중소기업 육성, 식량공급, 교육 등의 사업에 기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에볼라 확산 방지에 100만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당고테 회장은 이슬람 교도지만 특정 종교나 문화에 선입관이 없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제조업 부문을 책임지고 있는 그의 최측근도 나이지리아에는 많지 않은 기독교도다. 그는 평소 “사업을 성공으로 이끄는 것은 명문대 졸업장이나 종교가 아닌 정직과 근면함, 정신력”이라고 강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당고테그룹의 빠른 성장과 각 업종에서 영위하고 있는 시장 지배적 지위를 놓고 정치권의 비호가 있을 것이라는 의혹도 있다. 실제로 당고테 회장은 2010년 나이지리아 정부 일자리창출협의회 회장으로 임명됐으며, 국립 이슬람사원과 대통령 도서관 등 건립에 거액을 기부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그가 정치적 야망을 품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당고테 회장은 이달 진행되고 있는 나이지리아 대선 등 정치적 이슈에 철저히 중립을 유지하고 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