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출근해 근무 전 '열공'
"제대로 된 화재 조사에 힘쓸 것"
이런 화재 전문가들이 최고로 꼽는 자격증 중 하나는 미국의 화재폭발조사관(CFEI). 세계 여러 국가에서 인정해주는 자격증이다. 필기시험에 실무 평가까지 통과해야 하고 능숙한 영어 구사 능력도 필요해 지금까지 국내에서 180여명만 CFEI를 취득했다. 그것도 한국가스공사 같은 관련 공기업의 40대 이상 간부급 직원이 대부분인데 민간 기업 20대 직원이 CFEI를 따 화제다.
포스코 안전방재부에서 4년째 일하다 지난해 CFEI를 취득한 조영재 주무(29·사진)가 주인공. 조 주무는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좀 더 전문지식을 쌓고 싶다는 욕심에 CFEI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소방안전관리학을 전공하고 소방설비기사와 산업안전기사, 기계정비산업기사 자격증 등을 취득한 조 주무는 국제 화재 전문가로 인정받기 위해 CFEI에 도전했다고 한다.
그는 “자격증을 따기 전엔 부서 막내여서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었지만 지금은 내 의견에 확실히 힘이 실리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며 “화재 조사나 예방 조치에 기여할 수 있어 뿌듯하다”고 했다. 실제 조 주무의 제안으로 포스코는 지난달 공장 내 쇳물을 붓는 설비의 복사열을 차단하는 장치를 설치했다.
조 주무가 화재 전문가로 인정받는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직장 상사 눈치를 봐야 했기에 새벽 5시에 출근해 근무 시작 전까지 공부를 했다. 일과 후 밤 12시까지 회사에 남아 공부에 매달렸다. 그는 “짬짬이 공부 시간을 내는 게 어려웠다”며 “책을 몇 장씩 찢어 가지고 다니며 내용을 외우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조 주무는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작년 9월 미국 차량 화재전문조사관 시험을 본 데 이어 다음달 미국 화재조사강사 자격 시험을 치르러 간다. 이 시험을 보기 위해 결혼 날짜까지 맞추고 신혼여행지를 미국으로 정했다. 두 시험에 모두 합격하면 미국화재조사관협회가 발급하는 핵심 자격증 세 개를 보유하는 이른바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게 된다.
조 주무는 “한국에선 유난히 화재 사고 원인을 전기 합선이나 누전으로 돌릴 때가 많은데 대부분 원인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할 때 전기 탓을 한다”며 “앞으로 이 같은 안일한 결론을 줄여가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포항=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