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홀의 에메랄드 빛 바다.
보홀의 에메랄드 빛 바다.
섬이 7107개에 이르는 필리핀. 하루에 하나씩 가도 전부 다 보려면 20년이나 걸린다. 보라카이 세부 등 친숙한 섬 외에 어디에도 빠지지 않는 섬이 보홀이다. 희고 고운 모래밭이 있는 알로나 비치, 스쿠버다이빙의 천국 발리카삭, 슬픈 전설이 내려오는 초콜릿힐 등 무엇을 기대해도 그 이상을 보여준다.

필리핀이 꽁꽁 숨겨놓은 보석

백사장과 하늘이 어우러진 보홀의 바다.
백사장과 하늘이 어우러진 보홀의 바다.
마닐라에서 남쪽으로 약 700㎞ 떨어진 보홀은 필리핀에서 열 번째로 큰 섬이다. 크기는 제주도와 비슷하지만 인구는 제주도의 20%에 불과하다. 세부의 막탄이 잘 꾸며진 휴양지인 데 비해 보홀은 소박한 시골마을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그만큼 예전 필리핀다운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보홀에는 크고 작은 부속 섬이 많은데,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팡라오섬이다. 산호 해변이 자랑인 이 섬을 빙 두르고 있는 것은 고급 리조트들이다. 대부분 야자수 잎으로 엮은 지붕을 이고 있는 롯지 스타일이다. 여행자들은 코코넛 나무에 걸어놓은 그물침대에 누워 쉬거나 다이버 강습을 신청해 산호초 바닷속으로 떠나기도 한다.

팡라오섬 남쪽에 있는 알로나 비치는 보홀에서도 가장 멋진 해변으로 꼽힌다. 멀리서도 바닥이 훤히 보일 만큼 투명한 바다가 하얀 산호초 가루로 이뤄진 백사장과 어우러져 천국의 풍경을 빚어낸다. 여기에 한가로이 떠 있는 고기잡이 배까지 겹치면 ‘한 걸음만 더 가면 천국(One Step Before Paradise)’이라는 해변 앞 간판이 과장이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된다.

보홀을 가장 잘 설명하는 별칭은 ‘아시아의 홍해’다. 그만큼 물이 맑다는 뜻이자 홍해 못지않게 스쿠버 다이빙을 즐기기 좋은 곳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다이버들 사이에선 ‘보홀은 몰라도 보홀 바다는 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수많은 다이빙 포인트 중에서도 팡라오섬 남서쪽에 자리한 발라카삭의 명성이 가장 높다. 팡
오토바이를 개조해 만든 트라이시클. 필리핀의 대중교통 수단이다.
오토바이를 개조해 만든 트라이시클. 필리핀의 대중교통 수단이다.
라오섬에서 필리핀 전통배 방카를 타고 약 30분 정도 가면 닿는다. 섬 주변 바다는 수심이 얕지만 조금만 앞으로 나아가면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어지는 절벽형 해저 지형이다. 물이 맑아 가시거리가 좋은 데다 파도가 잔잔해 수많은 다이버가 즐겨 찾는다.

보홀은 초보자가 스쿠버다이빙을 배우기에 좋은 곳이다. 30분 정도만 교육을 받으면 누구나 쉽게 스쿠버다이빙을 즐길 수 있다. 안전을 위해 경험 많은 다이빙 마스터들이 1인당 1명씩 함께 바다로 들어가기 때문에 ‘황제 다이빙’으로도 불린다. 300달러를 내고 나흘간 다이빙 수업을 받으면 스쿠버다이빙의 1단계에 해당하는 ‘오픈워터 다이버’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

단 한 곳만 고른다면 단연 보홀

스노클링을 하더라도 보홀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모자람이 없다. 구명조끼를 입고, 대롱이 매달린 물안경을 쓰고, 발에 딱 맞는 오리발을 차고 물속에 몸을 던지면 물밑 세상의 아름다움이 한눈에 들어온다. 울긋불긋한 산호는 물론, 스쿠버다이빙을 하며 눈이 마주쳤던 형형색색의 열대어가 가히 환상적이다.

보기 드문 동물을 만나는 것도 보홀이 주는 즐거움 중 하나. 팡라오섬에서 배로 약 40분 가면 닿는 파밀라칸섬 인근에서 돌고래를 만날 수 있다. 광활한 바다에서 수백 마리의 돌고래가 자유롭게 노니는 모습은 짜릿한 감동 그 자체이자 장관이다.

 봉우리가 끝도 없이 솟은 초콜릿힐.
봉우리가 끝도 없이 솟은 초콜릿힐.
보홀 최고의 인기스타는 타르시어 원숭이다. 원주민들은 ‘마오막’이라고 부른다. 우리에겐 안경원숭이란 이름이 더 친숙하다. 눈 하나가 머리 전체 크기보다 커 붙은 별명이다. 타르시어는 머리에서 꼬리까지의 길이가 13㎝밖에 되지 않는다. 주머니에 쏙 들어갈 정도의 크기다. 인위적으로 서식지를 옮기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는 탓에 보홀 일부 지역에서만 볼 수 있다.

자연환경은 두말할 필요 없는 보홀의 자랑이다. 섬 가운데 있는 초콜릿힐은 독특한 경험을 선사한다. 경주의 왕릉처럼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 봉우리가 끝도 없이 솟아 있다. 이런 언덕이 약 1700개 정도다. 모두 바닷속에 퇴적돼 있던 산호섬이 융기해 만들어졌다. 평소에는 녹색이지만 건기인 12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는 풀이 모두 갈색의 초콜릿 빛깔로 변한다. 그 모양이 키세스 초콜릿을 닮았다고 해서 초콜릿힐이라는 애칭을 얻었다. 제일 높은 언덕에는 전망대가 있는데 꼭대기까지 놓인 계단의 숫자가 214개다. 원래는 212개였는데 연인들이 사랑을 고백하는 2월14일 밸런타인데이에 맞춰 2개의 계단을 더 놓았다고 하니 뭔가 로맨틱해지는 느낌이다.

보홀에 머문 1주일 동안 필리핀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이 무척 달라졌다. 보홀은 낙원에 가까운 곳이 아니라, 진정한 낙원이었다. 누군가 여행을 갈 때 단 한 곡의 노래만 가져가라면 존 레논의 ‘이매진’을, 단 한 곳만 가라면 보홀을 고를 수밖에 없겠다.

세부에서 배타고 한시간 반...평균 27도…5월까지는 건기

세부에서 보홀까지는 배를 타는 것이 일반적이다. 세부에서 보홀의 주도 타그빌라란까지는 70㎞ 정도 떨어져 있으며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오션제트(Ocean Jet), 위섬 익스프레스(Weesam Express) 등의 선사가 운항한다. 기온은 평균 27도가량이며 6~10월은 우기, 11~5월은 건기다. 우기라도 소나기가 오락가락하는 정도라서 여행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숙소는 대부분 팡라오섬에 있다. 3~5성급 호텔이 다양해 선택의 폭이 넓다.

보홀=글·사진 최갑수 여행작가 ssoocho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