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개방경제가 가른 중동의 여권(女權)
히잡을 쓰지 않은 검은색 긴 곱슬머리가 호르무즈해협의 바람에 흩날렸다. 지난 12일 바레인 수도 마나마에서 만난 하난 알 타와디. 활짝 웃는 모습이 스페인 배우 페넬로페 크루즈를 닮았다.

바레인경제개발청에서 마케팅과 홍보 업무를 담당하는 그는 오후 4시쯤 퇴근해 친구들과 카페에서 보드게임을 즐긴다. 휴일에는 피트니스센터에 가서 운동을 하고 휴가 때는 가까운 유럽과 아프리카 등으로 여행을 떠난다. 대화 도중 오후 기도 시간을 알리는 코란 낭송 소리가 들려왔다. 이슬람 교도들이 하루 다섯 번 한다는 기도를 해야 하지 않냐는 물음에 그는 “기독교인이라고 꼭 매주 교회에 나가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마나마 시내에선 타와디처럼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1928년부터 여성에 대한 학교 교육이 시작된 바레인에선 여성들이 금융과 각종 서비스업에서 활발하게 활동한다.

반면 호르무즈해협 건너편에선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IS(이슬람국가)가 잔인한 여성 인권 유린을 자행하고 있다. IS는 이달 초 “여성의 결혼은 9세부터 합법이고 아이를 낳는 것이 여성의 존재 목적이다. 집 밖에서 일하는 여성은 종교를 멀리하고 타락한 사고방식에 빠진다”는 내용의 지침서를 발간했다. IS 지역 여성들은 바깥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고 나갈 땐 전신을 가려야 한다. 50세가 넘은 남성과 10대 초반 여자 아이의 결혼 사례가 외신에 보도되기도 했다.

정치체제만 놓고 보면 바레인도 다른 중동 국가들과 크게 다르다고 하기 힘들다. 왕정이 유지되고 있고, 국민의 과반수인 시아파는 수니파 국왕에 맞서 매주 시위를 벌인다. 하지만 바레인의 사회적 개방성과 다양성은 확실하게 차이가 난다.

이는 개방적인 경제 시스템에서 비롯된다. 고대부터 아라비아반도와 외부가 소통하는 관문이었던 바레인은 지금도 세금이 없고 기업 소유권을 100% 인정하며 해외 자본 유치에 적극적이다. 타와디는 “바레인은 교역의 역사를 통해 다른 문화권의 가치관을 인정하고 경제적 실리를 추구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점을 배워 왔다”고 말했다.

노경목 마나마(바레인)/국제부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