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첩산중' 현대重…실적회복 첫발 떼려는데 통상임금에 또 발목
최악의 실적 부진에 빠진 현대중공업(사장 권오갑·사진)이 이번엔 통상임금에 발목이 잡혔다. 상여금을 모두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인건비 부담이 크게 늘어나게 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강도 높은 구조조정 작업을 추진하며 최우선으로 원가 경쟁력 확보에 힘을 쏟아왔으나 새로운 부담이 생겼다. 현대중공업 고위 관계자는 “통상임금이 적잖은 부담 요인이 됐다”고 우려했다.

◆인건비 부담 4800억원 증가

'첩첩산중' 현대重…실적회복 첫발 떼려는데 통상임금에 또 발목
울산지방법원 제4민사부는 12일 현대중공업 통상임금 판결에서 상여금 전부를 통상임금으로 봤다. 현대중공업은 설과 추석 명절에 각각 50%를 포함해 800%의 상여금을 지급하고 있다. 재판부는 “현대중공업의 경우 상여금 지급 대상에 관한 제한 규정 없이 모든 종업원에게 지급하고 퇴직자에게도 일할 계산 지급하는 등 판례에 따른 정기성·일률성·고정성 요건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면 현대중공업은 소급 지급액으로 4800억원을 새로 떠안게 된다. 노조가 당초 주장한 2조원에 비해서는 적은 수준이지만 가뜩이나 경쟁사 대비 임금 수준이 높아 수주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법원은 특근수당·야근수당 등 법정수당 가운데 근로기준법을 초과해 지급된 금액은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노조 일부 승소 판결이 내려짐에 따라 현대중공업은 항소 여부를 신중히 검토 중이다. 회사 관계자는 “적자가 3조원을 넘는 데도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라는 신의칙 기준이 적용되지 않아 유감”이라며 “판결문의 내용을 심도 있게 검토한 뒤 항소 여부를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쟁력 확보와 실적 반등 ‘비상등’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매출 52조5824억원과 영업손실 3조2495억원을 기록했다고 이날 공시했다. 조선·해양 플랜트의 저가 수주 영향으로 지난해 3분기까지 3조2272억원의 영업적자를 냈으나 4분기에 적자폭이 223억원으로 크게 줄었다.

최악의 상황은 벗어난 것 같다는 분석이 많지만, 이번 통상임금 판결에 따른 부담과 아직 최종 타결되지 않은 지난해 임금 및 단체협약 문제는 여전히 경영진의 운신 폭을 좁히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사는 1차 잠정 합의안이 조합원 투표에서 부결된 지 한 달 만인 지난 11일 두 번째 합의안을 마련한 상태다. 잠정 합의안의 골자는 △기본급 3만7000원(2.0%) 인상 △격려금 150%(주식 지급) 및 200만원 지급 △대리(기원) 이하 임금체계 조정 △특별 휴무 실시(2월23일) 등이다. 노조 측은 오는 16일 잠정 합의안에 대한 찬반투표를 할 예정이다. 회사 관계자는 “회사가 최악의 경영난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노사가 공감하고 타결을 이끌어낸 만큼 원만한 해결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구원투수를 맡은 권오갑 사장은 그동안 경쟁력 회복을 위해 인력 및 조직을 슬림화하는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해왔다. 현대중공업은 임원의 31%를 감축하고 과장급 이상 간부사원 1500여명에 대해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등 특단 조치를 내렸다. 과장급 이상은 성과급 연봉제로 급여체계도 바꿨다. 플랜트부문을 해양부문으로 통합하고 해외지사 파견인력을 축소하는 등 조직개편도 단행했다. 권 사장은 그동안 “경쟁사보다 많은 거품을 걷어내지 못하면 일감을 확보할 수 없고, 선박을 수주하더라도 원가가 높아 손실이 생긴다”고 지적해왔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