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부당 내부거래 처벌 '공포'…"계열사 헐값에라도 내놓자"
14일 대기업들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시작된다. 대기업 오너 일가 지분이 30%를 초과하는 기업(비상장사는 20%)은 규제 대상에 들어간다. 하지만 별도의 심사지침 없이 모호한 법 조항을 가지고 규제가 시작되면서 관련 기업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일단 규제 범위에서 벗어나고 보자’는 판단에 따라 문제 소지가 있는 계열사 지분을 헐값에 매각하는 사례도 재계 전체로 확산될 조짐이다.

◆계열사, 일단 팔고 본다

2월 현재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20곳의 계열사 84개가 여전히 공정거래위원회 지정 규제 대상에 포함돼 있다. 규제 시작을 앞두고 지난해 말부터 대기업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애초 삼성그룹은 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 삼성석유화학, 가치네트 등 3개사가 규제 대상이었다. 그러나 삼성석유화학은 지난해 삼성종합화학과 합병한 데 이어 곧바로 한화그룹과의 ‘빅딜’을 통해 매각 결정을 내렸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서 자연스럽게 제외된 것이다. 제일모직도 상장을 통해 지분율을 낮출 여건을 마련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 6일 승계구도의 핵심인 현대글로비스의 오너 지분 13.39%를 시간외 대량매매(블록딜)로 팔아 규제 대상에서 벗어났다. 오너 일가 지분이 많은 또 다른 계열사 이노션은 지분 매각에 이어 기업공개(IPO)를 준비하고 있다. GS그룹 중 GS네오텍은 신규 내부거래를 중단했다. 현대백화점그룹도 현대그린푸드의 오너 일가 보유 지분을 30.5%에서 29.92%로 낮췄다. 최근에는 자산총액 5조원 이하 중견그룹들까지 비슷한 매물을 시장에 내놓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일단 규제 대상이 되면 공정위에서 회사 내부거래 내역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문제가 있으면 민형사상 처리까지 간다”면서 “그 리스크가 너무 크다 보니 대기업들은 일단 규제 대상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 심사지침 작성 착수

기업들이 규제 대상 여부와 상관없이 ‘일단 팔고 보자’고 나서는 이유는 공정거래법 조항이 모호한 만큼 리스크를 아예 제거하겠다는 판단에서다. 공정위가 내부거래의 부당성을 정의한 ‘정상적인 거래보다 상당히 유리한 조건’을 명확히 해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회사가 직접 수행할 경우 상당한 이익이 될 사업 기회를 계열사에 제공하는 행위’도 처벌 대상인데 회사의 사업 선택에 대한 전략적 판단을 보는 시각이 공정위와 해당 기업이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불공정거래행위를 다룬 공정거래법 23조는 심사지침을 만들어 규제하지만,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다룬 23조2항은 별도 심사지침 없이 시행에 들어가면서 생긴 혼란이라는 게 법조계의 지적이다. 재계의 혼란이 커지자 공정위에서는 최근 별도 심사지침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들이 한꺼번에 지분 매각 등에 나서면서 기업가치도 하락하고 있다. 현대글로비스의 경우 지분 매각에 한 차례 실패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재추진하다 보니 당초 예상보다 2000억원가량 낮은 가격에 팔아야 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미 현대글로비스에 대한 검찰 조사로 한 차례 홍역을 치른 현대차 입장에서는 향후 공정위 조사를 받는 것보다는 손실을 보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윤아영/유승호 기자 youngmon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