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PA = 비스페놀A >
의료계 핫이슈 - 비스페놀A 안전성 결론
젖병·식품 용기 등 사용…美FDA도 "안전" 동일 결론
괴담에 소비자 혼란 가중…올바른 정보 공유해야
BPA는 플라스틱·에폭시 수지·감열지(感熱紙) 등의 제조에 사용되는 원료다. 세계적으로 매년 200만t 이상이 소비되고, 한국에서도 BPA 시장 규모가 3조원을 넘는다. 1957년에 상업적으로 처음 개발된 투명하고 단단한 폴리카보네이트(PC) 플라스틱의 높은 인기 덕분이다.
하지만 그동안 국내외에서 BPA 안전성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태아나 유아의 뇌 발육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괴담과 정자 수를 감소시킨다는 연구보고서, 캔 등에 함유된 BPA로 혈압이 갑자기 상승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러나 지난달 유럽식품안전청(EFSA)이 “비스페놀A의 노출로 인한 소비자 건강 위해성은 없다”고 최종 결론을 내려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해로운 환경호르몬 낙인 벗어
BPA는 그동안 환경호르몬으로 낙인이 찍혀 있었다. 폴리카보네이트로 만든 젖병·물병·식품저장 용기는 물론이고, 에폭시 수지로 코팅한 캔이나 종이컵에서 녹아 나오는 BPA가 문제가 된다. BPA 사용을 반대하는 진영에서는 어린아이의 불안·우울 지수가 높아지고, 학습 능력도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어른의 경우 혈압이 급상승한다는 논리를 전면에 세웠다.
물론 BPA에 대한 불안은 한국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사실 BPA만큼 다양한 문제가 제기된 경우도 찾아보기 어렵다. BPA가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남성 성기능에 영향을 주고, 식습관을 변화시켜 비만 위험이 높아진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태아와 유아 뇌 발육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서도 꽤 나왔다. 또 갑상샘에 영향을 주고 발암 가능성도 의심스럽다는 주장이 곳곳에서 제기됐다. 천식이나 심장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의심도 받고 있다. 심지어 물과 토양에 녹아 들어간 BPA가 장기적으로 콩과 식물의 질소 고정을 방해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특정 동물실험에서는 그런 의심이 어느 정도 사실로 밝혀진 사례가 있다.
BPA가 포함된 폴리카보네이트와 에폭시 수지를 식품 저장용기나 포장재로 사용할 수 있게 허가했던 EFSA도 귀를 닫고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전문가들의 문제 제기와 소비자들의 우려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2008년부터 과학위원회 등을 통해 450여편의 학술 연구자료를 종합적으로 검토, 지난달 최종 결론을 공개했다.
현재 소비자가 식품을 통해 섭취하는 BPA의 양은 안전한 수준이라는 것이 핵심이다. 현재 사용이 허가된 식품 용기나 포장재에서 녹아 나오는 정도의 BPA는 걱정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美·유럽 ‘위험성 매우 낮아’ 결론
EFSA의 ‘BPA 위해성 평가 보고서’에 의하면 유해성과 관련해 식품뿐만 아니라 모든 노출원을 검토했다.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이 면밀하게 재검토하는 등 매우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연구로 종합적인 재평가가 이뤄진 것이다.
EFSA는 최종 보고서에서 “비스페놀A 노출로 인한 소비자의 인체 건강 위해성은 없다”고 확고하게 결론을 내렸다. 또 EFSA의 전문 과학자들은 BPA에 관한 모든 연구를 종합한 뒤 더 엄밀한 방법론을 사용해 일일섭취한계량(TDI·the tolerable daily intake)으로 알려진 평생 동안의 안전 섭취량을 지정했다.
일일섭취한계량을 고려해 모든 근원지에 대한 노출을 평가한 결과, 모든 근원지에서의 BPA 노출은 매우 낮았으며 모든 연령대를 위한 새로운 안전 한도보다 훨씬 낮았다는 것이 골자다.
스티브 헨지스 미국화학협회 전무(세계피씨·비피에이 사무총장)는 “이번 EFSA의 결론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식품접촉 물질 내 BPA의 안전성을 확인하는 보고서, 캐나다 보건국 등 그 외 많은 정부기관의 ‘BPA 안전’이란 결과와 일치한다”며 “이제는 BPA에 대한 오해와 규제를 바로잡고, 소비자가 혼란스러워하지 않도록 올바른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류명호 한국피씨·비피에이협의회 사무국장은 “신뢰할 수 있는 글로벌 기관의 연구결과를 통해 한국도 이제 소모적인 BPA 위해 논쟁을 멈춰야 한다”며 “결론을 받아들이고 일반 소비자에게 올바른 정보를 적극적으로 홍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