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방송 점유율 33% 넘으면 영업 금지"…정치권 과잉규제 논란
국회가 IPTV 케이블TV 위성방송 등 유료방송 가입자의 점유율을 규제하는 법안을 본격 추진해 논란이 일고 있다. 여야는 이번주부터 전병헌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이 발의한 유료방송 합산규제 법안을 심사할 예정이다. 유료방송 시장 전체 점유율이 3분의 1을 넘는 사업자는 더 이상 가입자를 받을 수 없도록 하는 법이다. 시장 점유율이 일정 수준을 넘는 사업자의 독과점 폐해를 사후적으로 규제하는 게 아니라 사전적으로 영업 자체를 못하게 하는 것은 소비자 선택권과 기업의 영업 자유를 심각히 침해해 위헌 소지가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런데도 이 법을 계속 추진하는 것은 정치권의 무분별한 과잉입법 사례라는 지적이다.

국내외 전례 없는 사전규제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는 오는 13일과 23일 법안심사소위원회, 24일 전체회의를 연다. 우선적으로 통과가 논의될 법안 중 하나가 ‘유료방송 합산 규제’다. 전 의원과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이 각각 발의한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과 방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말한다. 어떤 사업자도 IPTV 케이블TV 위성방송 등 모든 유료방송의 합산 시장점유율을 3분의 1 이상 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이다.

법안의 별칭은 ‘KT 표적법’이다. 유료 방송 1위 사업자인 KT는 이 법안이 통과되면 유일하게 규제 대상이 된다. 이 회사의 유료방송 가입자 점유율은 위성방송인 스카이라이프와 IPTV를 합쳐 약 28%다. 만일 이 법이 통과되면 유료방송 점유율이 3분의 1을 넘어서는 순간부터 가입자를 한 명도 더 받지 못하게 된다. KT 유료방송 시청 희망자가 생기면 기존 가입자 가운데 탈퇴하는 사람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유료방송 점유율 33% 넘으면 영업 금지"…정치권 과잉규제 논란
기업의 영업 자유와 소비자 선택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시장점유율이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가입자를 받지 못하게끔 하는 사전적 시장규제는 업종을 막론하고 국내외 전례가 없다. 국내에서는 2006년 신문업계의 시장지배적 사업자 기준을 점유율 30%로 삼는 신문법이 위헌 결정을 받았다. 2013년 12월 미래창조과학부 방송통신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공동으로 마련한 ‘창조경제 시대의 방송산업발전 종합계획’에도 해외 주요 국가에 유료방송 사전 규제는 없다고 밝히고 있다.

“기존 케이블·IPTV 규제도 고쳐야”

KT를 제외한 유료방송 기업들은 합산 규제를 지지하고 있다. 급속히 시장점유율을 확대하는 경쟁사인 KT가 규제받으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어서다. 이들의 합산 규제 찬성 근거는 ‘동일 서비스 동일 규제’다. 기존에도 케이블TV와 IPTV는 각각 방송법과 IPTV 특별법에 의해 가입자 점유율이 3분의 1을 넘지 못하는 규제를 받고 있다. 그러나 KT스카이라이프는 유일한 위성방송 사업자로 점유율 규제가 없었다.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업계에는 KT가 준비 중인 IPTV 방식의 위성방송인 ‘접시 없는 위성방송(DCS)’ 등이 상용화되면 KT 가입자가 급증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크다.

합산 규제 찬반 여부를 떠나 동일 서비스 동일 규제 원칙에는 유료방송업계, 학계와 법조계 모두 동의하고 있다. 문제는 기존 규제의 타당성이다. 송시강 홍익대 법학과 교수는 지난해 11월 열린 관련 공청회에서 “시장점유율 사전규제는 불가피한 사유가 없는 한 지양해야 한다”며 “시장점유율이 커 독과점 횡포를 부리는 기업은 공정거래법 등으로 사후 규제를 하면 된다”고 말했다.

학계 “독과점은 사후 규제로 충분”

점유율 규제가 애초에 태어난 배경은 케이블TV 시장을 전국적으로 고루 발전시키기 위해서였다. 지방에도 사업자가 많은 케이블TV 업계는 사실상 전국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사업자가 생길 수 없는 구조다. 따라서 이 규제는 선언 이상의 의미가 없었다. 이후 IPTV가 등장하면서 기존 케이블TV 업계의 주장으로 IPTV특별법에 점유율 규제가 생겼다. 이렇게 당초 취지가 퇴색된 시장점유율 규제가 통합방송법으로까지 넘어오려는 것이다. 정치권의 과잉 규제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석현 법무법인 KCL 변호사는 “시장점유율 규제와 같은 기형적 제도가 왜 필요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KT와 케이블TV, IPTV 사업자들은 서로의 이해에 따라 편을 갈라 싸우고 있다. 정치권의 불필요한 과잉 입법이 건전한 시장 경쟁을 벌여야 할 기업들을 소모적 규제 논쟁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