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졸업장' 받는 일성여중고 만학도 530명, "행복은 발견하는 것…이제 삶의 용기가 생겨요"
“하늘에 계신 여보, 나 졸업해요.”

공부에 대한 한을 늘 안고 평생을 살았던 여성 만학도들이 값진 졸업장을 받는다. 일성여자중고(교장 이선재)는 과거 여러 불행한 사정으로 제때 학업을 마치지 못한 주부 학생들 530명(중학생 315명, 고교생 215명)에게 오는 25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졸업장을 수여한다. 고교 졸업생 215명은 대학에 전원 합격(4년제 42명, 2년제 173명)했다. 학생 가운데 92%가량이 50~70대다.

만학도들은 저마다 가슴 아픈 사연 등을 딛고 소박한 ‘인생 승리’를 이뤄냈다. 부친을 일찍 여의고 5남매 장녀로 가정 부양 때문에 학업을 포기해야 했던 박경임 씨(58)는 “배우지 못한 것이 부끄러워 늘 한이 됐다”며 “얼마나 듣고 싶었던 ‘여고생’ 소리였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3학년 2학기 학기말 고사에서 전교 1등을 차지한 그는 숙명여대 학점은행제 과정에 진학했다.

늦은 나이에 결혼했지만 2년 만에 남편, 이후에 모친 등을 줄줄이 잃어 “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는 방미옥 씨(52)는 학업을 유일한 희망으로 여기고 매진해 인덕대 사회복지학과에 합격했다.

남편을 신부전증으로 떠나보내고 자수를 놓으며 두 아들을 부양하다 중학교에 입학한 김향이 씨(63)는 고교반에 진학한다. 김씨는 “남편 잃은 허전함, 초등학교 중퇴 학력에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이었지만 이제 용기가 생겼다”며 “열심히 공부해 대학에 가 어려운 이웃에게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암 때문에 세 차례 대수술을 받고 2년 이상 투병했음에도 배움에 대한 끈을 놓지 않은 정현애 씨(75), 간암으로 어머니와 남동생을 8년에 걸쳐 모두 잃고 ‘미친 듯 울부짖으며 정신을 놓고 살았다’는 황미애 씨(58)도 공부로 마음을 다잡고 고교반에 진학한다. 황씨는 “행복은 발견하는 것”이라며 “이제는 내 곁을 떠난 어머니와 동생을 붙잡지 않고 서서히 놓아야겠다”고 말했다.

‘외할머니는 영어를 하는데 왜 할머니는 영어를 못해”라는 손주의 철없는 한마디에 못 해 본 공부를 시작했다는 박남순 씨(62)는 배화여대 전통조리과에 입학한다. 박씨는 “못 해 본 공부를 원 없이 해볼 것”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왕복 5~6시간 통학을 마다치 않는 열성파도 10명이나 된다.

최고령자급인 장늠이 씨(76)는 백석예술대 중국어 전공 ‘여대생’이 된다며 기뻐했다. 장씨는 “남들은 그 나이에 어떻게 어린아이들과 공부하겠느냐며 걱정하지만 개의치 않는다”며 “20대든 80대든 공부하면 젊은 사람이고 그렇지 않으면 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