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층 펜트하우스 1억달러
300m 높이 거실서 내다보면 센트럴파크·도심전체가 한눈에
'건축계 노벨상' 수상자가 설계
슈퍼리치들의 로망
고객 절반이 중동·유럽부호들
아래층엔 파크 하얏트 호텔…각국 언어로 일대일 서비스도
사방 통유리로 내다보이는 맨해튼 전경
지난 28일 방문한 모델하우스는 펜트하우스보다 낮은 62층이었지만 하늘과 연결됐다는 느낌을 온 몸으로 느끼게 해줬다. 때마침 허리케인급 눈폭풍이 구름을 싹 걷어가 맨해튼 하늘은 눈이 시릴 정도로 쾌청했다. 10m 높이의 사방 통유리 너머로 맨해튼 도심 전체가 거대한 지도판처럼 펼쳐졌다. 9·11테러의 상처를 딛고 그라운드제로에 들어선 월드트레이드원 빌딩도 한눈에 들어왔다. 맨해튼 섬과 뉴저지를 가르는 허드슨강 넘어 뉴저지의 절경인 팰리세이즈 절벽까지 잡힐 듯했다.
‘원57’의 시작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동산 거품이 터지면서 전 세계 경제가 ‘초토화’됐을 때 다이아몬드 딜러 출신 게리 바넷 엑스텔 대표는 최고급 럭셔리 아파트를 짓기 위해 10년간 준비한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겼다. 타깃은 전 세계 억만장자 중에서도 상위 0.0001%에 해당하는 부호들이었다. ‘최악의 불황이 최적의 투자 타이밍’이라는 직관을 믿었다.
이 건물에는 2개층을 터서 만든 펜트하우스 2채와 침실 3~6개짜리 주거용 아파트가 39~94층까지 배치됐다. 그 아래는 럭셔리 호텔의 대명사 파크하얏트호텔 객실 210개로 채웠다. 설계는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프랑스 건축가 크리스티앙 드 포잠박이 맡았다. 포잠박은 “억만장자에게 집은 최고의 도시를 경험하는 도구”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화려하기보다는 전망을 살려 자연스럽게” 모델하우스 내부는 화려하다기보다는 자연스럽다는 느낌이 강했다. 안내를 맡은 엑스텔의 지니 우드베리 세일즈대표는 “모더니즘과 절제된 화려함을 조화시켰다”며 “탁 트인 공간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사용된 자재는 물론 최고급이었다. 프랑스산 자단나무로 내부를 마감했고, 맞춤 디자인된 조명기구와 각종 집기는 예술품으로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부엌가구는 견고한 호두나무로 제작돼 우아한 분위기를 풍겼다. 욕실은 초호화 이탈리아산 실버골드색 대리석으로 바닥과 벽을 마감했다.
맨 꼭대기 펜트하우스의 정확한 판매가격은 1억47만1452달러(약 1151억원). 매수자의 신분은 공개되지 않았다. 펜트하우스의 면적은 1024㎡로, 가로와 세로가 각각 32m다. 1㎡당 1만246달러다. 관리비는 월 2만달러가 넘는다. 물론 세금을 제외한 액수다. 펜트하우스는 거실과 주방, 6개의 침실과 7개의 화장실, 2개의 파우더룸으로 구성됐다. 4개의 벽난로까지 설치됐다. 또 다른 펜트하우스 한 채의 주인공은 운용자산 170억달러의 퍼싱 스퀘어 캐피털 매니지먼트를 이끄는 헤지펀드계의 거물 빌 애커먼이다. 그는 75층과 76층을 터서 만든 펜트하우스 ‘겨울 정원’을 지난해 9000만달러에 사들였다. 그는 전에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자기집을 일컬어 ‘아파트의 모나리자’라고 했다.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갖고 있다는 뜻의 표현이었다.
‘원57’에 입주한 슈퍼리치들은 아래층 파크하얏트호텔의 시설도 이용할 수 있다. 입주자 전용 피트니스센터와 요가 스튜디오, 애완동물 미용실까지 모두 무료다. 케이터링, 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모두 세계 각국 언어로 1 대 1 서비스가 가능하다.
무엇보다 ‘원57’의 큰 장점은 이 건물의 위치다. 근처 플라자 디스트릭트에선 예술과 패션, 문화, 쇼핑까지 진정한 럭셔리를 누릴 수 있다. 카네기홀이 바로 길 건너편에 있고, 메트로폴리탄과 링컨센터도 걸어서 다닐 수 있다. “고객들은 세계 각국의 슈퍼리치들”
우드베리 대표는 “고객의 절반은 미국인이며, 나머지는 세계 각국의 슈퍼리치들”이라고 말했다. 영국, 프랑스, 스위스 등 유럽 각국의 부호들은 물론 중국, 러시아, 브라질, 나이지리아까지 국적도 다양하다는 설명이다. 비교적 ‘평범한’ 침실 3~5개짜리의 1800만~3500만달러 아파트는 중국인들이 지난해 대거 사들였다. 지난해 중국 부호들의 쇼핑 목록 1호가 ‘원57’ 아파트였다. 하지만 아직도 20%가량이 주인을 찾지 못했다.
그는 “이곳 집주인들은 대개 전 세계에 10채 이상 집을 갖고 자가용 비행기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라며 “1년에 뉴욕에 며칠 동안 머무는지, 언제 들어오는지 알 수도 없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 주인 중에서 한국인이 있을까? 그는 기다린 질문이었다는 듯이 미소를 짓더니 한국어가 선명하게 찍힌 안내 책자를 건넸다. “모두 몇 명인지, 그들이 누군지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이유는 아시죠?”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