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달러화 가치가 미국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강달러 여파로 작년 4분기 미국 주요 기업 실적이 줄줄이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수출 비중이 큰 미국 기업이 제품의 가격경쟁력을 잃은 데다 해외 매출을 미국으로 송금할 때 막대한 환차손까지 입은 탓이다. 실적이 악화된 기업들이 고용과 투자를 줄일 경우 미국 경제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출 대기업 실적 줄줄이 악화

强달러의 저주…美기업 '실적 쇼크'
27일(현지시간) 마이크로소프트(MS)와 캐터필러 등 미국 주요 기업들은 시장의 예상보다 부진한 작년 4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이 여파로 뉴욕 증시는 1% 넘게 급락했다. 다우지수와 S&P500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각각 1.65%와 1.34% 떨어졌다.

MS의 작년 4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8% 증가한 264억7000만달러(약 28조6880억원)로 집계됐다. 하지만 MS의 매출이 개선됐다기보다 작년 4월 인수한 노키아의 휴대폰 단말기 사업 덕분에 덩치가 커진 것이다.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11% 감소한 58억6000만달러에 그쳤다. MS는 “매출의 4분의 3이 해외에서 발생한다”며 “강달러 때문에 순이익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MS 외에도 IBM과 오라클 등 다수의 정보기술(IT) 기업 매출의 60%가량이 미국 밖에서 나오기 때문에 다른 산업보다 환율변동성에 취약하다고 진단했다.

세계 최대 중장비 기업 캐터필러도 이날 실망스러운 실적을 발표했다. 캐터필러의 작년 4분기 매출은 142억40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1% 감소했고, 순이익은 7억5700만달러로 25% 급감했다.

세계 최대 소비재 기업인 프록터앤드갬블(P&G)은 작년 4분기 매출이 4.4%, 순이익은 31% 줄었다. 해외 시장에 매출의 3분의 2를 의존하고 있는 P&G는 “강달러에 따른 환차손으로 올해 순이익은 14억달러 더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P&G 역사상 가장 심각한 ‘환율 충격’을 경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P&G 주가는 ‘실적 쇼크’로 이날 3.5% 급락했다. 제약업체 화이자와 화학업체 듀폰 등도 강달러 등을 이유로 시장의 기대를 밑도는 실적을 내놨다.

시장조사업체 샌퍼드 번스타인의 스티븐 위노커 연구원은 “기업의 매출 증가율이 10%에 육박한다면 환율 영향을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되지만 대부분의 기업처럼 한 자릿수 초중반인 상황에선 환율 위험이 큰 악재가 된다”고 진단했다.

○“기업들 투자·고용 줄일 수도”

올해 실적 전망도 밝지 않다. 미 달러화 가치는 2003년 9월 이후 11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은 상태다.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1년 전만 해도 80을 넘나들었지만 최근에는 95 안팎까지 올랐다. 달러화 가치가 20% 가까이 뛴 것이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과 일본 등 다른 주요 국가들이 대규모 양적 완화를 시행하는 상황에서 미국은 연내 기준금리 인상을 예정하고 있어 달러화 강세 속도가 더욱 가팔라질 수 있다. 바클레이즈 등 IB들은 “달러화 상승세가 단기간에 진정되긴 어렵다”며 주요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 전망을 잇따라 상향 조정하고 있다.

해외 시장에 진출한 미국 기업은 대부분 현지 통화로 매출을 올린다. 번 돈을 미국으로 보낼 때는 달러화로 환산해야 한다. 이 때문에 달러화 가치가 오르면 매출과 순이익이 줄게 된다. 또 미국에서 제품을 생산해 해외 시장에 수출하는 기업은 비싼 달러화로 비용을 치르고 상대적으로 싼 현지 통화로 상품을 판매해야 하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부담이 커진다. 로이터통신은 미국 기업들이 작년 4분기에만 120억달러의 환차손을 입은 것으로 추정했다.

실적이 악화되면 기업들이 고용과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다. P&G는 실적을 발표하면서 “앞으로 달러화 강세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려면 감원과 마케팅 예산 삭감 등 비용 절감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더그 오버헬먼 캐터필러 최고경영자(CEO)도 대대적인 긴축 경영을 선언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멈추지 않는 달러화 강세가 더 많은 기업의 실적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투자자들의 불안을 확대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