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가 갑이 되는 세상이 진짜 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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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농부' 방송인 김미화
동장군의 심술이 최고조에 달하던 이달 초.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 목신리 375의 4 국도변 배추밭에는 멀쩡한 배추 수백 포기가 뿌리를 박고 꽁꽁 언 채 너부러져 있다.
'에구구, 어쩌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얼어서 못쓰게 된 배추가 아까워 그런 게 아니다. 자식 같은 배추를 그대로 버려둔 농부의 마음이 안쓰러워 그런 게다. 그런데 한 단계 더 나가 안타까운 농부들의 사연을 이렇게 전하는 사람이 있다.
"지난 김장철에 도시의 주부들은 배춧값이 떨어졌다고 신나 했지요. 그런데 그때 배추 농사를 지은 농부님들은 출하를 위한 땀 대신 눈물을 흘리며 수확을 포기해야만 했어요."
'순악질 여사'로 통하는 개그우먼 출신의 방송인 김미화 씨. 과거 브라운관의 순악질 여사였다면 내버려진 배추를 보고 온 가족이 한데 모여 활짝 웃을 '웃음거리'를 선사했을 그녀다. 요즘은 이곳 용인의 작은 마을에서 농부들과 어울려 일상의 절반 이상을 촌부로 살고 있다.
"제가 농촌에 내려오지 않았다면 저 배추들을 보고 그냥 '배추가 얼었구나'라고만 느꼈을 거예요. 아니면 '진즉에 알았다면 내가 공짜로 가져다가 김장에 쓸 걸'이라고 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건 농부를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했다. 가격 폭락에 한 번 죽고 그것을 조롱당해 또 한 번 죽고…. 이어 "배추 가격 폭락 사태를 보면서 제가 즐거워할 때 다른 한편에선 아파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며 "이곳 농촌이 자신에게 또 다른 학교"라고 설명했다.
농촌은 내게 또 다른 학교
현재 그녀의 공식 일터는 이곳에 2013년 8월 오픈한 '카페 호미'다. 유명인들이 카페나 음식점을 열었다가 망하는 케이스가 많은데 1년 반을 버텼으면 성공적으로 안착한 셈이다. 브랜드는 재즈 뮤지션이며 대학교수인 남편 호세윤(본명 윤승호)과 그녀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딴 것. 농사일을 할 때 쓰는 작은 농기구 '호미'를 뜻하기도 한다. 시골마을에선 접하기 어려운 원두커피를 판매하는 카페다. 요깃거리 음식 메뉴도 있다. 남편이 외국에서 공부할 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배운 메뉴다. 미국의 스튜 요리인 '검보'와 순악질 피자가 대표적이다. 외관은 대형 컨테이너 4개를 연결해 특이하게 꾸몄다. 시골에서 요란을 떨려고 한 것은 아니다. 마을 농부들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문화예술 공간을 구상한 것이라고 했다.
"농부들이 흙 묻은 신발로도 언제든지 편안하게 들어와 쉴 수 있는 곳을 생각했어요. 설치 미술가인 친구의 도움을 받아 폐선박이나 폐건물의 낡은 파이프, 부서진 문짝 등의 시설물 등을 구해 인테리어 공사를 했지요."
삼면이 통창인 실내 중앙에는 인근 농부들이 생산한 단호박과 유기농 쌀 등을 판매하는 진열대가 마련돼 있다. 그 위에는 "농사는 예술이여!"란 문구와 함께 '순악질 여사'의 로고가 그려진 대형 스탬프 인쇄물도 붙어 있다. (주)순악질 농업법인도 만들어 운영 중이다.
"논 3305㎡(1000평)와 밭 1653㎡(500평)를 임대했어요. 고구마·감자·토마토·배추 등을 심고 캐며 도시에서 온 손님들과 농사 체험을 합니다. 농사 기술은 농부님들이 도와주죠. 주요 사업은 이곳 농부님들이 수확한 친환경 유기농 농산물을 서울에서 온 손님들에게 판매하는 건데, 요즘은 소문이 나서 그런지 가져다 놓기가 무섭게 팔리네요."
취급 품목은 철에 따라 바뀌는데 쌀·찹쌀·현미·토종계란·과일·채소류가 선보인다. 카페 손님도 제법 많다. 인터뷰 내내 서울에서 먼 길 내려온 손님들이 수시로 바뀌었다. 주문을 받으러 아니면 함께 사진 촬영을 요청하는 손님들에게 불려가 대화가 자주 끊어질 정도였다.
수입이 짭짤할 것 같았다.
"농업 법인은 수입이 없다고 보면 돼요. 카페에서는 종업원들과 아르바이트 인건비를 주고 우리 부부의 급여 정도 나오는 정도죠." 그렇다고 그들의 본업인 대학교수와 방송인의 수준은 물론 아니다. 그냥 나이에 맞춰 억울하지 않을 정도라고 했다. 남편과 함께 '카페 호미' 열어
김미화 씨는 코미디언 출신의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다. 1986년 KBS TV의 '쓰리랑 부부'란 코미디 코너를 통해 동료 김한국 씨와 명콤비로 명성을 날렸다. 양쪽 눈썹을 검정 테이프로 잇고 야구방망이를 든 ‘순악질 여사’의 캐릭터로 삶에 지친 국민들에게 오아시스 같은 웃음을 선사했다. 이후 거침없는 입담으로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 발탁된다. 그녀가 진행했던 MBC의 시사 프로그램인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은 보통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춘 진행과 입담으로 최고의 청취율을 기록하기도 한다. 2010년 KBS의 블랙리스트 사건을 시발로 소위 야성이 강한 연예인으로 지목되면서 안타깝게도 하차하게 된다.
"방송 생활 31년 동안 시청자·청취자 여러분들에게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갚을 길을 찾다가 여기로 들어왔는데…. 이곳에서 또 이렇게 농부님들의 사랑을 받게 되네요."
동네 사람들과 처음엔 살갑게 지내지 못했다고 한다. 카페를 열기 전에는 외부 스케줄 때문에 새벽에 나가 밤늦게 들어오다 보니 '별장 생활'을 하는 것으로 오해받을 정도였다.
"카페를 오픈하기 전에 돼지 두 마리를 잡아 동네잔치를 벌였어요. 이후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요즘은 아침마다 이집 저집 불려 다니는 게 일이랍니다."
불려 다닌다고 표현하는 게 아침 식사 초대다. 시골 사람들은 푸성귀는 대접이 아니라고 생각해 집집마다 아침부터 고기를 굽는단다.
"조식을 '장모님 씨암탉"으로 시작하는 것이나 다름없어요. 그런데 아침에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나면 오후까지 피곤한 줄 모르겠더라고요."
계면쩍은 웃음을 짓는 얼굴에 살짝 기미가 보인다. 짬짬이 밭도 갈고 풀도 뽑은 모양이다. 그랬으면 살도 빠질 만한데 방송 일을 할 때보다 후덕한 몸과 얼굴이다. '마음고생'과는 이제 담을 쌓은 듯하다. 재혼한 남편과의 생활이 궁금했다.
"친구처럼 잘 지내고 있어요. 식사 준비나 설거지도 누구의 일이란 개념이 없어요. 시간이 나는 사람이 해요. 남편의 주특기는 고기 굽기인데 저녁에 주로 삼겹살을 구어 반주 한잔하지요." 본인은 맥주 2컵, 남편은 소주 반 병이 기본 주량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모두 넷"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나이 차이가 있어 다행히 서로 부딪치는 일이 없단다. 게다가 큰 아이들은 학교 기숙사 등에서 따로 지내고 있어 주말에 만날 때면 서로 무척 반가워한다고 했다.
본인이 요리를 하면 김치찌개를 주로 끓인다. 된장·두부처럼 토속적인 메뉴를 즐겨 먹고 아무것이나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고. "요리는 남편이 더 잘한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불편할지도 모를 가정사를 이야기하는 표정이 밝고 행복하다. 카페 여주인답지 않게 작업용 방한화를 신고 분주하게 움직인다. 그런데도 몸무게가 5kg이나 쪘다고 했다. 마음 편하고 속 편해서 그런 모양이다.
방송 일에 대한 미련은 없을까.
"시사 프로그램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지방 방송국에서 제안이 들어온 게 있어요. 1주일에 한 번이겠지만 곧 방송에서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호미'의 사업을 소홀히 할 것은 아니다.
"농부님들이 갑(甲)이 되는 세상을 만드는 데 작은 역할을 하고 싶어요. 농부님들은 늘 을(乙)의 위치에 있더라고요. 열심히 정직하게 일하는 농부님들의 수고가 인정받는 사회가 되면 그게 갑입니다."
김미화 씨는 인터뷰 내내 농부란 단어를 쓸 땐 반드시 '님'자를 붙이며 그것도 모자란지 끝 자에 유독 힘을 주었다.
유지상 음식 칼럼니스트
< 본 기사는 한국경제매거진 한경BUSINESS 999호 제공 기사입니다 >
'에구구, 어쩌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얼어서 못쓰게 된 배추가 아까워 그런 게 아니다. 자식 같은 배추를 그대로 버려둔 농부의 마음이 안쓰러워 그런 게다. 그런데 한 단계 더 나가 안타까운 농부들의 사연을 이렇게 전하는 사람이 있다.
"지난 김장철에 도시의 주부들은 배춧값이 떨어졌다고 신나 했지요. 그런데 그때 배추 농사를 지은 농부님들은 출하를 위한 땀 대신 눈물을 흘리며 수확을 포기해야만 했어요."
'순악질 여사'로 통하는 개그우먼 출신의 방송인 김미화 씨. 과거 브라운관의 순악질 여사였다면 내버려진 배추를 보고 온 가족이 한데 모여 활짝 웃을 '웃음거리'를 선사했을 그녀다. 요즘은 이곳 용인의 작은 마을에서 농부들과 어울려 일상의 절반 이상을 촌부로 살고 있다.
"제가 농촌에 내려오지 않았다면 저 배추들을 보고 그냥 '배추가 얼었구나'라고만 느꼈을 거예요. 아니면 '진즉에 알았다면 내가 공짜로 가져다가 김장에 쓸 걸'이라고 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건 농부를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했다. 가격 폭락에 한 번 죽고 그것을 조롱당해 또 한 번 죽고…. 이어 "배추 가격 폭락 사태를 보면서 제가 즐거워할 때 다른 한편에선 아파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며 "이곳 농촌이 자신에게 또 다른 학교"라고 설명했다.
농촌은 내게 또 다른 학교
현재 그녀의 공식 일터는 이곳에 2013년 8월 오픈한 '카페 호미'다. 유명인들이 카페나 음식점을 열었다가 망하는 케이스가 많은데 1년 반을 버텼으면 성공적으로 안착한 셈이다. 브랜드는 재즈 뮤지션이며 대학교수인 남편 호세윤(본명 윤승호)과 그녀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딴 것. 농사일을 할 때 쓰는 작은 농기구 '호미'를 뜻하기도 한다. 시골마을에선 접하기 어려운 원두커피를 판매하는 카페다. 요깃거리 음식 메뉴도 있다. 남편이 외국에서 공부할 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배운 메뉴다. 미국의 스튜 요리인 '검보'와 순악질 피자가 대표적이다. 외관은 대형 컨테이너 4개를 연결해 특이하게 꾸몄다. 시골에서 요란을 떨려고 한 것은 아니다. 마을 농부들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문화예술 공간을 구상한 것이라고 했다.
"농부들이 흙 묻은 신발로도 언제든지 편안하게 들어와 쉴 수 있는 곳을 생각했어요. 설치 미술가인 친구의 도움을 받아 폐선박이나 폐건물의 낡은 파이프, 부서진 문짝 등의 시설물 등을 구해 인테리어 공사를 했지요."
삼면이 통창인 실내 중앙에는 인근 농부들이 생산한 단호박과 유기농 쌀 등을 판매하는 진열대가 마련돼 있다. 그 위에는 "농사는 예술이여!"란 문구와 함께 '순악질 여사'의 로고가 그려진 대형 스탬프 인쇄물도 붙어 있다. (주)순악질 농업법인도 만들어 운영 중이다.
"논 3305㎡(1000평)와 밭 1653㎡(500평)를 임대했어요. 고구마·감자·토마토·배추 등을 심고 캐며 도시에서 온 손님들과 농사 체험을 합니다. 농사 기술은 농부님들이 도와주죠. 주요 사업은 이곳 농부님들이 수확한 친환경 유기농 농산물을 서울에서 온 손님들에게 판매하는 건데, 요즘은 소문이 나서 그런지 가져다 놓기가 무섭게 팔리네요."
취급 품목은 철에 따라 바뀌는데 쌀·찹쌀·현미·토종계란·과일·채소류가 선보인다. 카페 손님도 제법 많다. 인터뷰 내내 서울에서 먼 길 내려온 손님들이 수시로 바뀌었다. 주문을 받으러 아니면 함께 사진 촬영을 요청하는 손님들에게 불려가 대화가 자주 끊어질 정도였다.
수입이 짭짤할 것 같았다.
"농업 법인은 수입이 없다고 보면 돼요. 카페에서는 종업원들과 아르바이트 인건비를 주고 우리 부부의 급여 정도 나오는 정도죠." 그렇다고 그들의 본업인 대학교수와 방송인의 수준은 물론 아니다. 그냥 나이에 맞춰 억울하지 않을 정도라고 했다. 남편과 함께 '카페 호미' 열어
김미화 씨는 코미디언 출신의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다. 1986년 KBS TV의 '쓰리랑 부부'란 코미디 코너를 통해 동료 김한국 씨와 명콤비로 명성을 날렸다. 양쪽 눈썹을 검정 테이프로 잇고 야구방망이를 든 ‘순악질 여사’의 캐릭터로 삶에 지친 국민들에게 오아시스 같은 웃음을 선사했다. 이후 거침없는 입담으로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 발탁된다. 그녀가 진행했던 MBC의 시사 프로그램인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은 보통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춘 진행과 입담으로 최고의 청취율을 기록하기도 한다. 2010년 KBS의 블랙리스트 사건을 시발로 소위 야성이 강한 연예인으로 지목되면서 안타깝게도 하차하게 된다.
"방송 생활 31년 동안 시청자·청취자 여러분들에게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갚을 길을 찾다가 여기로 들어왔는데…. 이곳에서 또 이렇게 농부님들의 사랑을 받게 되네요."
동네 사람들과 처음엔 살갑게 지내지 못했다고 한다. 카페를 열기 전에는 외부 스케줄 때문에 새벽에 나가 밤늦게 들어오다 보니 '별장 생활'을 하는 것으로 오해받을 정도였다.
"카페를 오픈하기 전에 돼지 두 마리를 잡아 동네잔치를 벌였어요. 이후 조금씩 가까워지면서 요즘은 아침마다 이집 저집 불려 다니는 게 일이랍니다."
불려 다닌다고 표현하는 게 아침 식사 초대다. 시골 사람들은 푸성귀는 대접이 아니라고 생각해 집집마다 아침부터 고기를 굽는단다.
"조식을 '장모님 씨암탉"으로 시작하는 것이나 다름없어요. 그런데 아침에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나면 오후까지 피곤한 줄 모르겠더라고요."
계면쩍은 웃음을 짓는 얼굴에 살짝 기미가 보인다. 짬짬이 밭도 갈고 풀도 뽑은 모양이다. 그랬으면 살도 빠질 만한데 방송 일을 할 때보다 후덕한 몸과 얼굴이다. '마음고생'과는 이제 담을 쌓은 듯하다. 재혼한 남편과의 생활이 궁금했다.
"친구처럼 잘 지내고 있어요. 식사 준비나 설거지도 누구의 일이란 개념이 없어요. 시간이 나는 사람이 해요. 남편의 주특기는 고기 굽기인데 저녁에 주로 삼겹살을 구어 반주 한잔하지요." 본인은 맥주 2컵, 남편은 소주 반 병이 기본 주량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모두 넷"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나이 차이가 있어 다행히 서로 부딪치는 일이 없단다. 게다가 큰 아이들은 학교 기숙사 등에서 따로 지내고 있어 주말에 만날 때면 서로 무척 반가워한다고 했다.
본인이 요리를 하면 김치찌개를 주로 끓인다. 된장·두부처럼 토속적인 메뉴를 즐겨 먹고 아무것이나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고. "요리는 남편이 더 잘한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불편할지도 모를 가정사를 이야기하는 표정이 밝고 행복하다. 카페 여주인답지 않게 작업용 방한화를 신고 분주하게 움직인다. 그런데도 몸무게가 5kg이나 쪘다고 했다. 마음 편하고 속 편해서 그런 모양이다.
방송 일에 대한 미련은 없을까.
"시사 프로그램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지방 방송국에서 제안이 들어온 게 있어요. 1주일에 한 번이겠지만 곧 방송에서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호미'의 사업을 소홀히 할 것은 아니다.
"농부님들이 갑(甲)이 되는 세상을 만드는 데 작은 역할을 하고 싶어요. 농부님들은 늘 을(乙)의 위치에 있더라고요. 열심히 정직하게 일하는 농부님들의 수고가 인정받는 사회가 되면 그게 갑입니다."
김미화 씨는 인터뷰 내내 농부란 단어를 쓸 땐 반드시 '님'자를 붙이며 그것도 모자란지 끝 자에 유독 힘을 주었다.
유지상 음식 칼럼니스트
< 본 기사는 한국경제매거진 한경BUSINESS 999호 제공 기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