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1년 만에 반복되는 탁상금융행정
지난해 텔레마케터들은 우울한 설 연휴를 보냈다. 작년 1월27일 금융당국이 일부 보험회사를 제외한 금융회사의 전화나 문자메시지, 이메일을 이용한 영업을 전면 중단시켜서다. 금융 당국은 당시 1억건이 넘는 개인정보 유출사고의 원인 중 하나로 고객 정보를 주로 활용하는 텔레마케팅 방식을 의심했다. 당국은 개인정보 유출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이런 조치를 취했고 10만명에 이르는 텔레마케터들은 두 달간 실업자로 지냈다.

1년이 지난 26일 금융당국이 각 은행, 증권사, 신용카드사, 보험사, 상호금융 등 업권별로 보관 중인 고객의 지문정보 수십억건을 2019년까지 폐기하라고 권고했다. 컴퓨터와 창고에 있는 10년치 자료를 일일이 찾아 없애라고 했다. 통장이나 카드 개설, 대출서류 작성 시 주민등록증 사본 뒷면의 지문정보 수집을 금지하고 지난 19일 이후 수집된 사례가 있으면 처벌 등 제재하겠다고도 했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마치 데자뷔처럼 1년 전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금융회사들의 말을 들어보면 금융당국의 조치를 현실화시키기 쉽지 않다. 우선 지문이 있는 서류만 해도 은행별로 수억건이다. 대출 종류별로 서류가 분류돼 있다 보니 한곳에서 해당 문서를 다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과적으로 수억건의 문서를 일일이 뒤져야 하는 상황이다. 아르바이트를 고용하든 직원들을 투입하든 이를 위한 비용도 만만찮다.

지문 정보로 개인정보를 불법으로 활용한 사례가 거의 없다는 것도 금융사들이 당국을 비판하는 이유다. 주민번호, 휴대폰 번호, 주소, 신용등급 등의 정보에 대한 보안을 강화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지만 지문정보를 활용해 불법 금융거래를 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는 설명이다. 한 은행의 정보보호 담당 임원의 토로는 당국의 일방통행식 행정에 대한 금융권의 불만을 짐작하게 했다.

“개인정보 보안을 위해 규제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현실성 없는 규제를 던져 놓고 ‘우리 할 일은 다 했으니 금융회사 당신들이 따라오지 못했을 때는 각오하시오’라는 식의 조치는 면피성 행정에 불과합니다.”

박신영 금융부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