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준 초대 총리 지명자의 예기치 않은 낙마로 발탁된 정 총리는 인사청문회와 국회 인준을 큰 무리없이 통과하고 박근혜정부 출범 바로 다음 날인 2013년 2월26일 임명장을 받았다. 정 총리는 책임 총리로서의 역할에 대한 논란이 없지 않았지만 비교적 무리 없이 국정의 제2인자 역할을 수행했다.
지난해 4월16일 세월호 참사가 터지면서 정 총리의 입지는 급격히 좁아졌다. 정 총리는 사고 당일 진도실내체육관에서 분노한 실종자 가족으로부터 물 세례를 받고 곧바로 자리를 뜨거나 청와대로 가겠다는 가족들이 경찰과 대치중일 때 몇 시간 동안 승용차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여 비난을 샀다.
참사 이후 11일 만인 지난해 4월 27일 정 총리는 참사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고 수습 이후 사표를 수리하겠다고 밝혔다. 정 총리는 세월호 참사 수습에 집중하는 한편 국무총리로서 최소한의 역할만 수행했다.
박 대통령은 후임 총리로 안대희 전 대법관과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을 연거푸 지명했지만 두 후보자 모두 각종 논란에 휘말리며 낙마했다. 결국 박 대통령은 지난해 6월 26일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정 총리의 유임을 발표했다.
정 총리의 거취가 다시 한번 주목받은 것은 지난해 말이었다. 청와대 문건유출 사건과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으로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급락하고 국정동력이 상실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여의도발 개각설이 급부상하면서다.
세월호 참사 수습에 주력해온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물러나면서 정 총리 역시 교체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 것. 이완구 신임 총리 후보자가 급부상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하지만 정 총리는 지난해말 총리와 경제·사회부총리로 구성된 3인 정례 협의체를 가동하고 법안 처리와 관련해 국회 상임위원장들을 잇따라 만나는 등 의욕적인 행보에 나섰다. 박 대통령이 유임 언질을 줬다는 이야기도 전해졌다.
올해 중순까지는 순항할 것으로 여겨졌던 정 총리는 마지막 위기를 넘긴 지 한 달이 되지 않아 연말정산 등 각종 악재에 휩싸인 청와대의 쇄신 국면에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경남 하동 출신으로 성균관대 법정대를 졸업한 정 총리는 30년간 검사로 활동했다. 공직을 떠난 후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거쳐 변호사로 활동하던 정 총리는 2012년 4·11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아 '공천개혁'을 주도하며 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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