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1주년 맞는 해외건설정책지원센터 강신영 소장 "해외 현장서 흘린 땀방울이 대한민국 만들었죠"
“해외 건설 역사는 한국 발전의 역사입니다.”

창립 1주년을 앞둔 해외건설정책지원센터 강신영 소장(사진)의 말이다. 올해는 1965년 태국 빠따니~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 이후 해외 건설 50주년이 되는 해다. 강 소장은 “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와 해외 근무 기피 등으로 해외 건설 노하우 전수가 점점 어려워질 수 있다”며 “기업은 인센티브 제공, 정부는 세제 혜택 등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글로벌 건설엔지니어링 전문지 ENR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은 2012, 2013년 연속 연간 해외 건설 수주액 세계 6위를 기록했다. 강 소장과 같은 수많은 ‘해외 건설 전사’들이 흘린 땀이 기반이 돼 이룬 성과다. 홍익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강 소장은 1982년부터 19년간 동아건설에서 근무하며 이 중 절반을 해외에서 보냈다. 1984년 사우디 리야드 순환도로 공사를 시작으로 1987년, 1992년 리비아 1, 2차 대수로 공사 현장에서 일했다. 또 1998년 2월 다시 리비아를 찾아 음극방지(CP)건설공사 분소장으로 2년 반 동안 근무했다. 수로 건설로 식생과 기후가 바뀌면서 강수량이 늘어나 관의 부식이 빨라지는데 이를 막기 위한 전기·화학적 처리를 CP라 한다. 그는 당시 가장 골칫거리로 도난사건을 꼽았다.

“200~300㎞ 떨어진 베이스캠프에서 현장을 오가는 생활을 반복했습니다. 밤에는 경비를 세워놓고 철수하는데 아침에 와보면 경비들은 손발이 묶인 채로 시궁창에 박혀 있고 자재들이 온통 사라지는 겁니다. 한번은 휠로더(건설중장비 일종)가 몸체만 남고 나머지 부분은 전부 없어진 일도 있었어요. 어차피 고생하러 간 거라 힘든 건 둘째치고, 정말 난감하더군요.” 아들이 녹음해 보내준 카세트 테이프로 한국 가요를 듣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혼자 떠나 집을 자주 비워 가족에게 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라고 말했다.

2001년 8월 해외건설협회로 옮긴 뒤에는 주로 사업성평가실장을 맡았다. 해외 토목공사를 할 때 건설사가 발행하는 여러 채권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보증을 하는데 이때 사업성평가를 진행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김선일 씨 피살 직후인 2004년 8월에는 이라크 자이툰부대 민사작전통합본부(CIMIC) 건설교통부 대표로 1년간 파견됐다.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철모와 방탄복을 입고 앞으로는 특전사, 뒤로는 아르빌 민병대 호위를 받으며 바짝 긴장한 채 지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해외건설정책지원센터는 국내 건설에 비해 해외 건설 연구 및 정책수립 지원기관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따라 지난해 2월 국토교통부 산하 기관으로 세워졌다. ‘해외 건설 기자재 조달 효율화 방안’ ‘미얀마 건설시장’ 등 주기적으로 정책자료를 펴내고 국토부 글로벌인프라펀드 사업타당성 평가 등 금융지원 업무를 하고 있다. 강 소장은 “올해부터 해외 건설에 관해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담아 전달하는 전문기관지 ‘K-빌드 저널’을 매달 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