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Biz] '억대 뇌물' 판사 감싼 대법원
현직 판사가 사채업자에게서 억대 뒷돈을 받았다가 구속 수감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더 놀라운 점은 그동안 대법원이 자체 조사를 한 뒤 “문제가 없다”며 감싸왔다는 점이다.

이 판사가 사채업자에게서 억대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이 처음 불거진 건 지난해 4월이었다. 대법원은 이 의혹에 대해 “본인의 소명과 자료 제출 등을 검토한 결과 근거가 없는 의혹 제기”라고 대응해왔다.

지난 18일 해당 판사가 긴급체포된 뒤에야 대법원은 “해당 판사에 대한 강력하고 엄정한 조처를 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최근 “법원과 법관의 순수성·진정성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한 게 무색할 지경이다.

대법원은 이 문제에 대해 “강제수사권이 없어 상황을 아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상황을 잘 몰랐으면 “검찰 수사를 지켜보겠다”고 했으면 될 일이다.

중대한 혐의를 받는 당사자의 말과 제출 자료만 믿고 “문제가 없다”고 하는 건 ‘제 식구 감싸기’로 볼 수밖에 없다. 판사가 아닌 일반 범죄 피의자가 재판에서 무죄를 주장했다면 법원은 그의 말이 맞는지 꼼꼼하게 따져봤을 것이다.

‘제 식구 프리미엄’을 누릴 수 없는 일반 소시민들 입장에서는 허탈하고 화가 날 수밖에 없다. 이 문제는 어쩌면 판사 한 명의 비리보다 더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다.

옳고 그름에 따라서 판단을 해야지 당사자가 누구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져서는 안 된다. 이는 사법 정의의 본질이기도 하다. 아주 드물게 생기는 일부의 문제로 전체를 평가하는 게 아니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런 일부의 사건에서 법원 전체의 모습을 본다. 한 번 무너뜨린 신뢰는 다시 회복하기 어렵다. 나아가 법원의 독립성도 위협할 수 있다.

한 가지 더. 구속됐다고 끝난 게 아니다. 아직 클라이맥스가 한 장면 더 남아 있다. 판사가 돈을 받은 대가로 사채업자에게 뭘 해줬는지를 밝히는 일이다. 이걸 밝히지 못해 업무 연관성이 부인되면 이 판사는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된다.

실제로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 사건 등에서 이 같은 이유로 돈 받은 공무원을 처벌하지 못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뇌물은 앞으로 일어날지 모르는 사건에 대비해 공무원을 내 편으로 만들어놓기 위해 들어놓는 보험의 성격을 지닌다.

오른손으로 뇌물을 받은 뒤 왼손으로 바로 대가를 주는 건 하수들이나 하는 짓이다. 결론이 어떻게 날지 두고 볼 일이다.

양병훈 법조팀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