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조정실이 지난해 12월 ‘한의사의 현대식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병원을 늘려 의료산업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보건당국은 전문가단체 의견 수렴을 거쳐 올 상반기에 한의사가 사용할 수 있는 의료기기 범위를 확정할 방침이다.

이에 대해 대한의사협회 등은 “의료법상 규정된 면허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의사 11만명의 면허 반납까지 검토하고 있다. 엑스선이나 초음파기기 사용을 영상의학 전문성이 부족한 한의사에게 허용하면 환자 안전이 위협받는다는 논리다. 영상검사를 통해 환자 상태를 진단하는 일은 영상의학을 전공한 의사만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반면 한의사협회는 글로벌시대를 맞아 ‘융합’이 대세인 만큼 한의대에 영상의학과목을 개설해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지금은 한의원을 찾는 환자들이 일반 병원에서 영상검사를 받고 이를 다시 한의원에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진료비와 보험재정 부담이 가중된다는 것이다. 안압측정기 등 많은 현대식 의료기기의 측정 결과가 자동으로 추출되는 경우가 많고 신체에 위해가 없다는 것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찬성/ 의료기기 사용 법적 문제 없어…국민 편익·진료비 부담 줄어들어

영상진단 교육 양·한방 비슷…규제 철폐 타당


정부가 규제 기요틴 회의에서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제한 규제’를 철폐하기로 한 것은 국민과 입법부, 사법부가 한목소리로 요구해온 사항이다.

최근 발표된 각종 설문조사를 보면 국민 10명 중 9명이 이에 찬성하고 있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도 매년 국정감사 등에서 한의사가 의료기기를 통해 국민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치료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 문제에 다소 보수적이던 사법부 역시 2013년 12월26일 헌법재판소 판결을 통해 ‘의료인인 한의사가 기본적인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만장일치 결정을 내렸다.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은 법적인 문제가 전혀 없다. 하지만 양의사 중심의 보건의료체계 속에서 보건복지부와 사법부의 임의규제로 불합리한 규제를 받아왔고, 이로 인한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갔다.

단적인 예가 한의원을 가장 많이 찾는 질환 중 하나인 발목 염좌다. 한의사가 엑스선을 사용할 수 없어 환자들은 우선 양방 병의원에서 골절 여부를 확인한 뒤 다시 한의원으로 와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아픈 다리로 병의원을 전전하고, 병원비도 이중으로 부담해야 하는 불합리한 일이 1년에 425만건 발생하고 있다. 한의사들이 엑스선을 사용해 골절 여부만 확인할 수 있어도 국민의 편익과 진료선택권이 크게 향상된다.

한의사가 엑스선을 활용해 환자를 진찰하고 치료해줘서 손해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의사는 환자를 더 정확히 진찰할 수 있어 좋고, 환자는 한의원에서 더 정확한 진료서비스와 정보를 제공받아 좋다. 이처럼 모두에게 이로운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에 제3자인 양의사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현대 의료기기가 서양의학 원리에 의한 것이라는 것과 한의사들이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다.

하지만 이는 모두 사실과 다르다. 현대 의료기기는 서양의학적 원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과학·공학원리로 개발된 산물이다. 인체 내부의 현상을 더 정확히 관찰하기 위한 측정도구다. 골절에서 ‘서양의학적 골절’과 ‘한의학적 골절’의 구분이 없듯이 인체를 관찰하고 진단하는 데는 가치중립적인 현상만 있을 뿐이다.
국민은 지금 한의사에게 서양의학적 치료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측정도구로 본인들의 몸을 더 정확히 관찰해 잘 치료해달라는 것이다.

교육 문제 역시 양의사들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양방의대 6년 과정과 한의대 6년 과정에서 배우는 영상진단 관련 과목의 커리큘럼과 학점을 비교해보라. 놀랍게도 거의 비슷한 시간과 과정의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양방의대 6년 과정을 거친 일반의처럼 한의사도 자유롭게 엑스선과 초음파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규제 기요틴의 목적은 명확하며, 결코 양의사와 한의사의 직능 간 다툼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국민이 보다 객관적인 진단과 이를 통한 효과적이고 안전한 치료를 받기 위해 한의사에게 의료기기를 사용하라고 주문하고, 정부가 이에 응답한 것이 핵심이다.

의료법 제1조엔 ‘국민이 수준 높은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중략)…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고 돼 있다. 국민 모두가 원하는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이 허용돼 국민의 편익과 건강 증진에 이바지할 수 있길 바란다.

반대/ 한방은 양방과 의료체계 달라…과학적 근거없는 진단 용납 안돼

의료법상 범위 벗어나…환자안전 위협 받을 것


한의사에게 현대 의료기기를 허용하겠다는 정부의 일방적 발표에 의료계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양·한방 간 진료영역에 대한 갈등은 한번은 치러야 할 숙명과도 같은 난제다. 우리보다 앞선 외국 사례를 보자.

일본은 1774년 독일 해부학책을 ‘해체신서’로 번역하면서 전근대 빗장을 열고 근대화 길로 들어섰다. 에도시대 학자들이 막부 허락을 받아 사형수 시신을 해부하면서 주목한 것은 그동안의 한의학적 지식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었다. 동양의학에서 서술한 음양오행의 인체와는 전혀 다른 실제 인체를 확인한 그들은 메이지유신을 거쳐 한의학을 폐기하고 경험으로 환원될 수 있는 서양의학적 지식을 받아들였다.

중국 근대화 과정에서도 의학 문제는 전근대적 국민성의 계몽과 매우 긴밀하게 연결돼 진행됐다. 1880년대에 시작된 중국 지식인들의 중의학에 대한 비판은 1920~30년대 루쉰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고, 국가제도로부터의 퇴출 결정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1948년 마오쩌둥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중의학은 민족주의적인 보호를 받게 되고, 그 후 50여년간 비판할 수 없는 영역으로 이어졌다.

마오쩌둥 사후 중국 사회 발전에 따라 그간 중단됐던 중의학 비판은 다시 진행됐고, 중의학을 만든 나라로서 결자해지 차원에서 중의학과 이별해야 한다는 중국 지식인들의 양심선언이 잇따랐다.

16세기 이전에는 현재와 같은 학문은 거의 없었다. 하늘·땅·인간에 대한 인식 변화가 오고서야 현재와 같은 학문이 태동했다. 질병으로부터의 해방과 생명 연장을 현세에서 기대할 수 있게 된 것도 각고의 지혜를 모아 만든 현대의학의 발전에 따른 것이다.

어떤 학문 분야도 기본 이론이 있어야 한다. 그것을 생명체에 비유하면 영혼 같은 것이다. 그 순수한 영혼을 부정한다면 학문과 생명체는 존재가치가 없어진다. 양방과 한방으로 나뉜 의료이원화 제도의 부작용으로 발생하는 지속적인 소송에서 의료계는 줄곧 승소했다. 승소 판결의 논리는 학문의 기초이론이 무엇이며, 의료기기의 학문적 배경이 어디에서 유래하는가에서 찾을 수 있다.
의료계는 현대의학의 영혼을 지키려 노력해 왔다. 수년에 걸친 노력의 결과물로 일궈낸 판결들은 일관되게 천동설과 지동설만큼 의학과 한의학의 차이를 인정했다.

하지만 한의학이 조금씩 현대의학 이론을 도용하면서 이제 80% 이상의 커리큘럼을 현대의학으로 배우고 있다고 주장하는 실정이다. 급기야 현대 의료기기 사용까지도 요구하게 된 것이다.

객관적·과학적 경험과 임상을 거치지 않은 한방이론은 과학과 양립하기 어렵다. 과학의 기준을 들이대는 순간 충돌할 수밖에 없다. 궁극의 원인과 병소를 탐구하고 치료하는 것이 현대의학이다. 또 이를 경험적 사실로 확인하는 수단이 현대의료기기다. 아무리 간단한 의료기기일지라도 과학적 근거를 제시한 기본 위에서 진단이 이뤄져야 한다.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으로 ‘규제개혁’이라는 분위기에 편승해 인류의 오랜 지혜로 이룩한 숭고한 의학의 영혼에 감당하기 어려운 상처를 내서는 안 된다. 의료계는 과학적 양심과 윤리, 인권의 이름으로 현대의학의 영혼을 지키려 한다. 한의학 이론과 전혀 무관한 현대 의료기기를 애매한 한방적 진술을 포장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시도는 결단코 용납될 수 없다.

이준혁/고은이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