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법원 판결이 노동분쟁 원인이 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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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관성 잃은 노동문제 '원님재판'
불법파업 등 현장혼란만 가중시켜
흔들리지 않는 판단기준 내려줘야"
권혁 <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불법파업 등 현장혼란만 가중시켜
흔들리지 않는 판단기준 내려줘야"
권혁 <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전통적으로 노사 갈등은 근로조건에 관한 미스매치에서 비롯됐다. 요즘은 상황이 바뀌었다. 노동법 해석을 둘러싼 법원의 판결에서 연유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노동사건에 관한 판결이 언론에 보도되기라도 하면, 아무 문제없던 사업장도 순식간에 갈등의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일이 생겨난다.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듯, 그렇게 판결들은 노사관계라는 호수에 연신 내던져지고 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노사관계는 격하게 요동치기를 반복하고 있다. 통상임금 문제가 그랬고, 곧 최종 판결이 내려질 휴일근로 문제도 그렇다. 오래된 논란거리지만, 여전히 새로운 판결이 나올 때마다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불법파견 문제도 마찬가지다. 한국 노동현장의 잘못된 관행과 불법이 그 원인이라면 우리 스스로가 마땅히 감내하고 또 극복해야 한다. 하지만 법원 판결이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해 노동현장이 혼란스러운 거라면 심각하게 되짚어 볼 문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했던가. 지금도 어떤 변호사를 쓰느냐가 소송의 승패를 좌우한다는 인식이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비싼 돈을 들여 대형로펌을 찾아가는 이유다. 노동사건만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어떤 변호사냐’보다는 ‘담당 판사가 누구냐’가 중요해지고 있다. 담당 판사가 어떤 이념적 성향을 가졌는지에 따라, 아직 판결이 나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소송 당사자들 간에 희비가 엇갈리는 일도 있다고 한다. 사실이 이렇다면, 허투루 넘길 일이 아니다. 이유는 이렇다.
판사는 고사하고 경찰만 봐도 겁나는 게 우리네 정서다. 그런 사람들이 서로 소송에 나설 정도면 각자 억울한 사정이 있어도 단단히 있는 거다. 그래도 막상 판결이 나오면 담담히 받아들인다. 다른 사람도 아닌 ‘판사님’의 결정이기 때문이다. 판결이 일관성을 잃고 ‘원님재판’이 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다른 판사를 만났더라면 틀림없이 결과가 달랐을 것’이라 믿고 승복하지 않을 것이다. 법원의 권위와 신뢰는 순식간에 무너지고 만다.
2013년 12월 대법원은 통상임금에 관한 전원합의체 판결을 내렸다. 노동현장에서조차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었지만, 나름대로 명확한 판단기준들이 제시되는 성과가 있었다. 실제로 연이은 하급심 판결들이 어느 정도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 덕택에 한동안 잠잠해지는 듯했다.
하지만 최근 통상임금 문제가 다시 노동현장을 긴장하게 만들고 있다. ‘재직자 지급조건’을 두고 대법원과 해석을 달리한 하급심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 불법파견 문제를 둘러싼 판결들도 그 법리가 엇갈리고 있다. 종래와는 다르게, 도급공정의 내용이나 장소를 따지지 않고 전 공정에 대해 불법파견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다른 한편 정부는 하청근로자의 산업안전이나 복지혜택 향상을 위해 원청회사의 긴밀한 협력과 배려를 당부해왔다. 법원이 이마저도 불법파견의 판단지표로 삼으면서 노동현장의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노동현장의 바람은 단순하다. ‘명확한 판단기준’을 달라는 것이다. 어디선가 판결이 나왔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긴장해야 하는 노동현실을 그대로 방치해 둘 수는 없지 않은가. 본질적인 원인은 노동법의 후진성에 있다. 산업환경은 짧은 시간에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었지만 노동법은 정체된 채로 머물러 왔다. 법과 현실의 간극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은 법원의 몫이었다.
노사관계 당사자뿐만 아니라 법원의 권위와 신뢰를 위해서도 이제 노동법의 현대화 작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노동법 입법자야말로 그 누구보다 부지런해야 한다”는 독일 어느 법학자의 말이 새삼 무겁게 다가온다.
권혁 <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했던가. 지금도 어떤 변호사를 쓰느냐가 소송의 승패를 좌우한다는 인식이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비싼 돈을 들여 대형로펌을 찾아가는 이유다. 노동사건만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어떤 변호사냐’보다는 ‘담당 판사가 누구냐’가 중요해지고 있다. 담당 판사가 어떤 이념적 성향을 가졌는지에 따라, 아직 판결이 나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소송 당사자들 간에 희비가 엇갈리는 일도 있다고 한다. 사실이 이렇다면, 허투루 넘길 일이 아니다. 이유는 이렇다.
판사는 고사하고 경찰만 봐도 겁나는 게 우리네 정서다. 그런 사람들이 서로 소송에 나설 정도면 각자 억울한 사정이 있어도 단단히 있는 거다. 그래도 막상 판결이 나오면 담담히 받아들인다. 다른 사람도 아닌 ‘판사님’의 결정이기 때문이다. 판결이 일관성을 잃고 ‘원님재판’이 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다른 판사를 만났더라면 틀림없이 결과가 달랐을 것’이라 믿고 승복하지 않을 것이다. 법원의 권위와 신뢰는 순식간에 무너지고 만다.
2013년 12월 대법원은 통상임금에 관한 전원합의체 판결을 내렸다. 노동현장에서조차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었지만, 나름대로 명확한 판단기준들이 제시되는 성과가 있었다. 실제로 연이은 하급심 판결들이 어느 정도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 덕택에 한동안 잠잠해지는 듯했다.
하지만 최근 통상임금 문제가 다시 노동현장을 긴장하게 만들고 있다. ‘재직자 지급조건’을 두고 대법원과 해석을 달리한 하급심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 불법파견 문제를 둘러싼 판결들도 그 법리가 엇갈리고 있다. 종래와는 다르게, 도급공정의 내용이나 장소를 따지지 않고 전 공정에 대해 불법파견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다른 한편 정부는 하청근로자의 산업안전이나 복지혜택 향상을 위해 원청회사의 긴밀한 협력과 배려를 당부해왔다. 법원이 이마저도 불법파견의 판단지표로 삼으면서 노동현장의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노동현장의 바람은 단순하다. ‘명확한 판단기준’을 달라는 것이다. 어디선가 판결이 나왔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긴장해야 하는 노동현실을 그대로 방치해 둘 수는 없지 않은가. 본질적인 원인은 노동법의 후진성에 있다. 산업환경은 짧은 시간에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었지만 노동법은 정체된 채로 머물러 왔다. 법과 현실의 간극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은 법원의 몫이었다.
노사관계 당사자뿐만 아니라 법원의 권위와 신뢰를 위해서도 이제 노동법의 현대화 작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노동법 입법자야말로 그 누구보다 부지런해야 한다”는 독일 어느 법학자의 말이 새삼 무겁게 다가온다.
권혁 <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