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低유가 치킨게임, 에너지투자 늘릴 때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40달러대로 확 떨어진 국제유가
자원개발·에너지산업 초토화 우려
에너지 경쟁력 높일 기회 삼아야"
정우진 < 에너지경제硏 선임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 >
자원개발·에너지산업 초토화 우려
에너지 경쟁력 높일 기회 삼아야"
정우진 < 에너지경제硏 선임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 >
![[시론] 低유가 치킨게임, 에너지투자 늘릴 때다](https://img.hankyung.com/photo/201501/AA.9492943.1.jpg)
그러나 비록 원유시장이 공급과잉에 있지만 유가하락 속도가 이같이 큰 것은 유가를 올리기 위한 산유국들의 전략적 행태에서 비롯된 것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세계 원유시장을 지배하는 중동권 국가들은 ‘프래킹(fracking)’ 기술을 개발해 대량의 셰일오일을 생산하는 미국 내 원유증산 추세를 방임할 경우 자신들의 지배력이 위협받을 것으로 보고 셰일오일의 시장퇴출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중동권 국가들의 가장 큰 강점은 생산비가 세계 어느 산유국보다도 낮은 배럴당 10달러 내외의 원가경쟁력이다. 유가를 하락시켜, 고유가 덕에 생산원가가 높음에도 공급을 증대해 왔던 셰일오일뿐만 아니라 오일샌드, 심해유전 등 비전통자원이나 해양원유에 압박을 가하는 것이다. 이들이 시장에서 사라지거나 축소되면 중동권 국가의 독점력이 강화되면서 유가는 다시 상승하게 될 것이다.
이런 중동 산유국의 시장퇴출 전략이 성공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원가가 높은 원유라 해도 운영비(가변비) 이상의 유가만 형성되면 생산을 계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이하에서 유가가 형성돼도 일정 기간은 버티기로 생산을 지속할 가능성도 있다. 국가 운영을 원유수익에 의존하는 중동권 역시 유가가 배럴당 60~70달러는 넘어야 안정된 예산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저유가의 고통이 작지 않다.
그러나 세계 경제의 침체로 유가가 반등한다 해도 저유가는 상당 기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생산비가 높은 유전들부터 퇴출되면서 지금의 석유공급 과잉현상은 해소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경기가 좋아지면 유가는 다시 상승 기조를 탈 것이며, 주요 산유국에서 분쟁이 일어나면 유가는 천정부지로 올라가게 될 것이다. 세계 석유시장에서 저유가와 고유가의 순환은 1차 오일쇼크가 있었던 1973년 이래 40년 이상 반복된 현상이다.
에너지 수입액이 전체 수입액의 30%를 차지하는 한국으로서는 유가하락이 일견 반가운 일이지만, 경제에 미치는 득과 실은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우려되는 것은 자원빈국인 한국의 지속가능한 성장에 필요한 신재생에너지를 비롯해 에너지효율·자원개발 산업 등 핵심 에너지산업들이 후퇴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런 산업들은 아직 국제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지 못했지만 정부의 산업 강화정책과 기업의 투자확대에 힘입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그러나 저유가 기간이 오래되면 그나마 쌓아왔던 기술력과 인적 자원, 산업 경험이 사라지지 않을지 걱정이다. 지금과 같은 유가 하락기에 에너지산업 투자를 더욱 강화하는 정부의 노련한 정책발상과 기업의 전략적 마인드가 필요한 시점이다. 유가하락은 한국뿐만 아니라 국제 에너지산업들도 어려워지면서 고유가로 인해 접근하기 어려웠던 고가의 에너지기술이나 양질의 에너지기업을 낮은 비용으로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저유가에 매몰돼 정책과 투자전략을 바꾸면 에너지산업이 크게 후퇴하고 고유가 때 다시 복구하려면 몇 배의 비용과 시간이 들 것이다. 유가하락 흐름을 활용해 한국 에너지산업의 경쟁력을 몇 단계 도약시키는 성숙된 정책과 전략적 사고가 요구된다.
정우진 < 에너지경제硏 선임연구위원·객원논설위원 wjchung@keei.r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