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관리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 주는 요즈음이다. 정치판에서는 소위 ‘OOO 문건 유출’사건으로 한바탕 법석이 일었다. 지난해 2월 유출됐다는 청와대 문건이 뒤늦게 언론에 알려지면서 진위 여부와 유출 책임에 대한 공방이 계속됐다. 국가 기강을 흔드는 사안에 수긍할 만한 사후 조치는 없었다. 청와대에서 유출된 문건임에도 국정 최고책임자는 감정을 듬뿍 담아 그것을 ‘찌라시’로 폄훼한 것이 전부였다. 국가적 재난을 총괄하는 청와대와 그 주인이 보여준 위기관리의 모습이었다.

또 하나의 사건은 기업에서 벌어졌다. 한 항공사 경영자가 자사 비행기에서 서비스가 매뉴얼대로 이행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를 넘은 질책을 했다. 사안도 문제였지만 처음 언론에 보도된 지 15시간 만에 내놓은 사과문이 더 큰 위기를 자초했다. 사과의 본질이랄 수 있는 주체와 대상, 진정성이 결여됐기 때문이었다. 국민적 분노는 커졌고 해당 항공사는 잇따라 수세적인 조치를 내놓았지만 최악의 상황만 연출했다. 한 번의 실수만으로도 엄청난 인명 손실을 가져올 수 있는 항공회사가 취한 관리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모습이었다.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이 두 가지 사건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이 위기관리에 대한 조언을 쏟아내고 있다. 위기를 정확히 정의해야 한다부터 시작해 커뮤니케이션 창구를 단일화해 통일된 대응책을 만들고 그것을 발 빠르게 실행으로 옮기라고 한다. 모든 내용은 기록으로 남기며, 종료된 다음에는 내용과 절차를 복기해 교훈으로 삼으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좋은 조언들이고 맞는 내용들이다. 과연 국가 최고 권력기관이, 일등 항공사가 이런 내용을 몰랐을까. 잘 구축된 위기 대응 절차도 이미 마련돼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바보 같은 모습으로 위기를 키웠을까.

위기를 보는 시각 차이와 그 차이를 줄이는 것이 근본 해결책이다. 사건이 발생하면 내부에서 믿는 사실보다 외부에서 인식된 시각을 우선해 그 차이를 줄이는 행동을 재빠르게 하는 것이다. 외부 시각에 주안점을 두어야 하는 것, 그리고 신속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 전부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기관들은 이 두 가지 위기관리 근본을 도외시했다. 안에서 믿는 사실에 안주해버렸다. 밖에서 보는 시각을 감안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외부에 대고 왜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떠드느냐는 훈계조의 설명을 사과라는 이름으로 내보냈다. 분노의 촉매제만 됐을 따름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간단하다. 자유로운 소통 문화가 답이다. 위기가 발생하면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속도’다. 외부에서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를 파악하는 속도와 정확한 대응책을 선제적으로 제시하는 속도가 관건이다. 그런데 이 속도는 ‘소통의 속도’다. 모든 직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자유로운 의견 제시로 이뤄지는 소통 속에서만 속도를 가속화할 수 있다. 외부에서 인식되고 있는 내용을 전방위로 파악하는 주체는 모든 직원이다. 일부 경영자만이 할 수가 없다. 한계와 왜곡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직원이 외부 각 계층의 인식을 신속하게 파악하는 것이 외부 인식을 정확히 읽는 속도다. 그런데 이 속도는 내부의 자유로운 소통문화로 만들어진다.

외부 인식을 정확히 파악했다면 이제 사과를 포함한 메시지를 외부에 제시하는 단계다. 메시지 주체와 대상을 정의한 후 진정성 있는 내용을 만들어 적절한 채널로 내보내는 것이다. 이 단계가 합목적적이며 신속하게 이뤄지기 위해서도 직원의 자유스런 소통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최고경영자 눈치를 살펴 메시지 주체가 잘못되거나, 메시지 내용이 최고경영자를 향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빠른 응대에도 불구하고 악영향만 끼치게 될 뿐이다. 응대 속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유스런 소통의 속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청와대는 귀를 닫고 있는 것이 아니며, 여론을 잘 듣고 있다.” 문서 유출 파문과 관련한 청와대 대변인의 언급이다. “오너와 경영진 등 상사에게도 ‘노’라고 얘기할 수 있는 조직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해당 항공사 최고경영자의 언급이다. 모두가 자신들은 잘 듣고 있는데 아랫사람들이 소통하지 않는다는 얘기로 들린다. 자유스런 소통문화를 만드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자신이 불통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들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으니 위기가 찾아온다고 하면 지나친 것일까.

박기찬 < 세계경영연구원(IGM)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