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업계 오너 2·3세들의 경영 승계가 한층 빨라지고 있다. 새해를 맞아 30대 중반에 대표이사를 맡아 경영 전면에 나서는 중소형 제약사가 잇따르고,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40대 초반의 2·3세가 새로 사장을 맡은 회사도 적지 않다. 국내 제약산업이 정체된 상태에서 비교적 일찍 경영을 맡게 된 2·3세 경영인들의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국제약품은 지난 5일 남태훈 부사장(34)을 공동 대표이사에 선임했다. 남 신임 대표는 남영우 국제약품 명예회장의 장남이며 창업주인 고 남상욱 회장의 손자다. 30대 중반임에도 대표자리를 맡긴 것은 3세 경영승계를 위한 포석이다.

앞서 삼일제약도 지난해 말 창업자인 허용 명예회장의 손자인 허승범 사장(34)을 사장으로 선임했다. 30대 경영인들이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이들 업체는 모두 매출 1000억원 선에서 수년째 정체를 보이는 중소형 제약사다. 이 때문에 2·3세 ‘젊은 피’를 내세워 경영 쇄신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상위 제약사 중에서는 녹십자와 일동제약의 2·3세 경영인이 눈길을 끌었다. 일동제약은 3세인 윤웅섭 사장(46)이 지난해 3월 사장에 올라 경영을 이끌고 있고, 녹십자는 올 1월부터 고 허영섭 회장의 차남인 허은철 사장(43)이 대표이사를 맡아 전면에 나섰다.

녹십자는 일동제약의 지분 29.36%를 보유한 2대 주주다. 녹십자는 지난해 일동제약의 지주사 전환 안건을 주주총회에서 무산시켰다. 긴장관계인 두 회사의 경영 전면에 오너 일가가 나선 것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40대 중후반에 대표를 맡던 과거에 비해 경영을 책임지는 창업 2~3세 연령이 낮아지고 있다”며 “실력을 입증해야 하는 부담도 그만큼 크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