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암살을 다룬 영화 ‘인터뷰’를 제작한 소니픽처스를 해킹한 사건이 국제 외교 문제로 커지고 있다. 미국이 북한을 제재하기 위해 중국에 도움을 요청한 가운데 중국도 사이버 공격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중국 내부에서는 ‘골칫거리’ 북한에 대한 포기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中, 우회적으로 북한 비난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최근 북한의 사이버 공격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중국에 협조를 요청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2일 보도했다. 이는 북한에 대한 이른바 ‘비례적 대응’의 첫 단계로, 북한의 해킹 능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조치라고 미 정부 고위 관료는 전했다. NYT는 북한이 외부 통신망을 전적으로 중국에 의존하고 있어 효과적인 제재를 위해 중국의 협조는 필수적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중국 외교부는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전날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의 전화통화에서 “중국은 모든 형태의 인터넷 공격과 인터넷 테러 행위를 반대한다”고 말했다고 이날 홈페이지에서 공개했다. 왕 부장은 “그 어떤 국가나 개인이 다른 국가에 있는 시설을 이용해 제3국에 대해 인터넷 공격을 하는 것에도 반대한다”고 밝혔다. 왕 부장이 북한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지만 우회적인 대북 비난 메시지를 보냈다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중국이 미국의 요청에 직접 응할지는 불투명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와 관련, 지난 5월 미 법무부가 미 기업의 비밀을 빼낸 혐의로 중국군 관계자 5명을 기소하면서 발생한 양국의 갈등도 변수가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과거 미국이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 북한 관련 사안이 발생했을 때 중국의 도움을 기대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고 WSJ는 덧붙였다.

◆중국서도 ‘북한 포기론’ 공개 제기

중국 내에서도 더 이상 북한을 봐줘선 안 된다는 ‘북한 포기론’까지 공개적으로 제기되는 등 논란이 커지고 있다. NYT는 최근 중국매체 환구시보에서 북한 옹호를 둘러싼 ‘공개 설전’이 벌어졌다며 중국 내부에서 북한에 대한 짜증과 분노가 일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북한이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 3주기 추도행사에 중국 지도자를 초청하지 못한 점 등을 들어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악화하고 있다고 이 신문은 분석했다.

환구시보는 최근 실린 리춘두 저장대 한국연구소 교수의 “중국의 동반자인 북한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기고에 대해 “붕괴를 향해 나아가는, 다루기 어려운 동맹은 지원할 가치가 없다”는 왕훙광 인민해방군 예비역 중장의 반박 글을 게재했다. 환구시보는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다.

NYT는 “중국 정부 소유 신문에서 북한의 지지를 둘러싼 공개토론이 벌어졌고 인민해방군 웹사이트에도 관련 내용이 포스팅됐다는 사실만으로도 북한과 중국의 관계가 얼마나 나빠졌는지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영화 개봉 안 하면 최대 1억 손실

북한의 해킹과 테러 위협으로 상영 중단 결정을 내린 소니는 사면초가에 몰렸다. 특히 허술한 보안관리로 산업 전체를 공포에 빠뜨렸다는 비판여론이 집중되고 있다. 영국의 일간 가디언은 “소니가 기본에 실패했다”며 “사이버 대재앙을 초래한 소니에도 책임이 크다”고 지적했다. 소니는 마이클 린턴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나서 “영화를 어떤 식으로든 방영할 계획”이라며 “다양한 선택 방안을 놓고 검토 중”이라고 CNN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와 관련, 뉴욕포스트는 소니가 자사 온라인 배급사인 크래클을 통해 영화를 무료로 배포할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의 정치컨설팅업체 유라시아그룹의 이언 브레머 대표도 “소니가 무료 배포를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온라인 스트리밍 또는 주문형비디오(VOD)로 상영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포천에 따르면 영화 ‘인터뷰’를 사장시킬 경우 소니는 제작비와 홍보비 등 1억달러가량의 손실을 볼 것으로 추산됐다. 데이비드 보이스 소니 변호인은 외신과의 통화에서 “어떤 식으로 배포될지 결정되지 않았지만 분명 배포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