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하락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정유주가 상승세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원유 감산 합의 불발로 고꾸라졌던 주가가 상승 탄력을 받고 있다. 유가가 떨어져도 정유주가 오르는 것은 단순히 유가 자체가 아니라 정제마진이 정유사 수익을 결정하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유가와 정제마진은 비슷한 방향성을 갖지만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유가 하락에도 정제마진 개선…정유株의 반전
○유가 하락에도 양호한 정제마진

두바이유 현물가격은 지난 4일(현지시간) 배럴당 66.95달러로 3개월 전에 비해 30% 이상 떨어졌다. 지난 27일(현지시간) OPEC이 감산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70달러대를 지키던 유가가 곤두박질쳤다. 유가 하락에 정유업종 대장주인 SK이노베이션에쓰오일 주가도 급락했다. 감산 합의 실패 후 2거래일간 SK이노베이션은 10.9%, 에쓰오일은 9.8% 떨어졌다.

이어 지난 2일 이후로는 두 종목 모두 4거래일 연속 상승세를 나타냈다. 지난 4일(현지시간) 두바이유 하락에도 5일 SK이노베이션은 0.7%, 에쓰오일은 5.79% 올랐다. 통상 유가 하락은 정제마진 하락으로 이어진다.

원유를 국내로 들여오는 기간이 한 달 정도 걸리기 때문이다. 유가가 떨어지면 원유를 구입했을 때보다 하락한 가격으로 정제한 제품을 판매해야 하는 만큼 손해를 보는 것이다. 미리 사둔 재고분에 대한 평가손실이 발생한다. 올해 정유사들의 실적이 부진했던 이유다.

하지만 최근 정제마진은 유가 하락에도 양호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권영배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11월 아시아의 정제마진은 2013년 7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며 “유가가 하락하면 정제마진도 줄어들 것이라는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움직였다”고 전했다. “낮은 유가가 석유제품 소비를 자극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정유업계에 따르면 올 6월부터 8월까지 배럴당 4달러대에 그쳤던 아시아 정제마진(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 기준)이 지난달 7.41달러로 상승했다. 지난해 7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유가 바닥…내년 실적 회복

유가의 추가 하락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전망도 정제마진 회복에 힘을 실었다. 올 4분기까지는 실적이 추정치를 밑돌 수 있지만 내년을 바라보는 장기 투자자에겐 매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황유식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연초 대비 큰 폭으로 유가가 떨어져 올 4분기까지 대규모 재고평가 손실은 불가피하다”며 “하지만 유가가 바닥 수준인 만큼 내년엔 평가손실을 만회하고 이익 회복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SK이노베이션의 영업이익 추정치는 3159억원이지만 내년에는 1조1195억원으로 254%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에쓰오일도 올해 247억원 영업적자에서 내년엔 4466억원 이익을 내며 흑자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유주가 앞으로 당분간은 올해와 같은 고난의 시기를 견뎌야 할 것이란 시각도 있다. 올 들어서만 SK이노베이션 주가는 39.2%, 에쓰오일은 38.3% 하락했다. 한승재 이트레이드증권 연구원은 “정제마진은 반등했지만 정유사업부문의 구조적 흑자를 기대하게 할 수준은 아니다”며 “유가 하락 위험은 여전히 정유주에 대한 우려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