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공공기관 방만경영 정상화 추진을 놓고 정부와 노동계가 대립각을 세우고 있었던 지난 7월. 한 치의 양보도 없던 상황은 박근혜 정부 2기 경제팀인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등장과 함께 순식간에 바뀌었다. 공공기관 정상화 방안은 노동계와 대화할 뜻이 없다는 전임 현오석 부총리의 입장을 뒤집고 전향적으로 나서면서 ‘개점휴업’ 상태이던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재가동에 들어갔다. 지난해 12월 한국노총이 대화테이블을 떠난 지 8개월 만이었다.

그로부터 4개월여가 지난 이달 2일 노사정위는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 4차회의를 열고 시급히 다뤄야 할 의제로 노동시장 이중구조, 임금·근로시간·정년연장, 사회안전망 확충 등 5대 의제별 14개 세부과제를 확정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최경환 경제팀이 정규직 과보호 완화, 비정규직 기간제한 연장 등 강력한 정책 의지를 보이고 있고, 노동계는 “모든 근로자를 하향 평준화하려는 의도”라며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대환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을 최근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만났다.

▷노동시장 구조개선에 대한 합의가 연내에 나옵니까.

“이달 초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임금체계 개편·근로시간·정년연장, 사회안전망 강화 등을 우선 논의하기로 노·사·정이 합의했습니다. 이 문제들은 노동, 경제 분야를 넘어 한국 사회 전반의 문제입니다.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 문제가 아닌 남성·여성, 장년과 청년 등 모두와 관계된 의제죠. 그 중요성과 포괄성을 인식하고 논의해가자고 뜻을 모은 상태입니다.”

▷최근 ‘정규직 과보호 완화’ 문제가 쟁점입니다.

“큰 틀에서 볼 때 기재부에서 제대로 짚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기업 정규직 유(有)노조’로 구분되는 7% 남짓의 근로자들은 유연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반면 ‘중소기업 비정규직 무(無)노조’에 속하는 대상은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제가 늘 해오던 얘기입니다. 다만 이번 논란에서는 해고에 관한 이야기가 부각되면서 본질이 흐려진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양자구도 논의로 흐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먹고사는 방법이 다양하듯 급여나 고용형태 등 노동시장도 굉장히 복잡합니다. 단순히 양자구도가 아닙니다.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정규직은 다릅니다. 대기업 비정규직이 중소기업 정규직보다 처우가 좋은 경우도 많고요. 따라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하는 식으로 구분할 게 아니라 정규직 과보호 문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구분해 접근해야 합니다. 대기업 정규직의 경우 상당히 경직돼 있는 것은 사실이지요.”

▷노동시장 유연화 방안은 무엇인가요.

“유연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통상적으로 유연화라고 하면 감원을 생각하는데, 이는 1998년 외환위기의 상처 때문이라고 봅니다. 유연화는 수량적인 측면에서 고용유연화도 있지만, 임금체계를 바꾸고 근로시간을 조정하고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도 해당됩니다. 나아가서는 노동시장에 일자리 정보가 원활히 흐르게 하는 고용서비스도 시장을 유연화하는 방법입니다.”

▷대기업 정규직의 경직성이 문제라는 지적입니까.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갖춰져 있다면 고용유연화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금은 사회안전망이 미흡해 해고되는 순간 근로자는 나락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죠. 즉 생과 사의 문제인 셈이죠. 하지만 임금이나 근로시간 등을 조정하는 것은 얘기가 다릅니다. 임금을 조금 더 받거나 덜 받고, 조금 더 일하거나 덜 일하는 방식으로 유연화할 수 있는 폭이 넓습니다.”

▷노동계는 ‘근로자 하향 평준화’라며 반발합니다.

“중소기업 비정규직에 대해서는 보호를 강화하고 지원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반면 대기업 정규직은 고용이나 임금 등에 있어 상당히 경직적입니다. 하지만 정규직에도 (기업 규모, 노조가입 여부 등) 여러 형태가 있어 한 덩어리로 보면 안 됩니다. 비정규직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사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노사정위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필요에 의해 구성된 조직입니다. 노동시장 구조개선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수도 없고, 노동계가 싫다고 버틸 수도 없는 문제입니다. 각자가 현실을 인식하고 미래를 바라보고 논의가 진행돼야 합니다. 현재의 손익 계산을 넘어 다음 세대를 감안한 논의가 (노사정위에서) 진행돼야 합니다.”

▷정부·재계에 비해 노동계는 소극적인데.

“노동시장은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항상 변하는 ‘생물’입니다. 이중구조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청년들은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고, 또 그것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노동계가 다음 세대를 위해서도 적극 나서야 할 이유지요. 대기업 정규직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의 처우를 그대로 고수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기업들은 당연히 저임금 근로자를 찾을 것이고, 이는 곧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노사정위 내 노동계 목소리에 비정규직은 빠져 있습니다.

“중요한 지적입니다. 노사정위 내 노동계 목소리에는 미조직·비정규직 근로자도 포함돼야 하는데 현실적으론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지난해 9월 참여주체와 논의대상을 확대하는 노사정위 개편안이 국회에 제출됐는데, 아직도 통과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노동계 목소리를 충분히 받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죠. 물론 법 개정 전에도 당연히 비정규직, 청년, 여성들의 입장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노동계는 자신의 조직뿐만 아니라 전체 근로자의 의견을 대변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김 위원장이 그동안 지적해온 국내 노동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과 하청 간의 불균형이 심화되는 이중구조다. 그중에서도 어떤 문제가 가장 시급한 과제냐는 우문(愚問)에 “어느 것 하나 시급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현답(賢答)이 돌아왔다.

“노동시장 개혁의 핵심과제는 이중구조 완화입니다. 이중구조가 심화되고 고착화되면 이는 곧바로 사회 양극화로 연결됩니다. 노동시장 자체가 기능을 못할 수도 있는 것이죠. 따라서 이중구조 개선은 근로자 간 평등의 관점을 넘어 전체 경제의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국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평가한다면.

“유연성을 국제적으로, 평면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사실을 오도할 위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굳이 비교를 하자면 국내 노동시장 유연성은 법제적으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실제로 해고비용 등을 감안하면 상당히 경직돼 있습니다. 법제적으로는 정리해고가 비교적 유연하게 규정돼 있지만 실제로 순탄히 이뤄진 적이 없지요.”

▷이달 중 나올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은 무엇을 담고 있나요.

“아직 부처 간 협의가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그 내용은 기본적으로 노사정위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에서 다루지 않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따라서 정부 대책은 노사정위 논의를 바탕으로 정해지는 게 가장 바람직합니다. 또 부분적으로, 각론으로 해결을 보려 해서는 답이 안 나옵니다. 전체를 보면서 현재보다는 미래를 보고 접근해야 합니다.”

■ 김대환 위원장은 …

김대환 위원장은 스스로 ‘사대주의자’, 즉 사회적 대화주의자라고 부른다. 노동계와 재계가 정부 정책에 따라 첨예하게 대립하는 노·사·정을 한 테이블에 앉히고 그 틀을 유지해가는 방법은 ‘대화’밖에 없다는 의미다.

노동경제학을 전공한 학자 출신으로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대통령직 인수위 간사, 노동부 장관 등을 지낸 대표적인 노동 전문가다.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두 차례나 노사정위원장직 제의를 받은 김 위원장은 “대통령이 세 번씩이나 요청하게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이 자리를 맡게 됐다”고 말했다.

△1949년 경북 금릉군(현 김천시) 출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영국 옥스퍼드대 경제학 박사△인하대 교수 △참여민주사회시민연대 정책위원장 △참여사회연구소 소장 △대통령직인수위 경제2분과 간사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 경제노동분과 위원장 △노동부 장관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장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