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면 인사혁신처장이 정부서울청사 19층 집무실에서 인사혁신처의 업무혁신 목표 D데이를 표시한 게시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처장과 인터뷰한 지난 29일은 인사혁신처가 발족한 지 열흘이 되는 날이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이근면 인사혁신처장이 정부서울청사 19층 집무실에서 인사혁신처의 업무혁신 목표 D데이를 표시한 게시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처장과 인터뷰한 지난 29일은 인사혁신처가 발족한 지 열흘이 되는 날이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19층에 있는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 집무실에 들어서자 게시판에 굵직하게 적힌 D-90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이 처장은 “인사혁신처가 열흘 전 발족하면서 D-100부터 시작했다. 어린애가 태어나서 살아남기 위해 엄마 젖을 빨려고 얼마나 안간힘을 쓰나. 신설 부처인 만큼 큰 틀의 정책 입안을 100일 동안 제대로 해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날짜로 목표치를 적어 인사혁신처 공직자들에게 긴장감을 바짝 불어넣겠다는 뜻도 있다.

[단독 인터뷰] 공직사회 개혁 나선 이근면 인사혁신처장 "잦은 부서이동으로 전문성 막는 '공무원 순환보직제' 손질할 것"
공무원 인사와 채용 정책뿐만 아니라 공무원연금 개혁을 총괄하는 자리에 삼성에서 37년간 인사 업무를 맡았던 이 처장이 민간 출신으로는 처음 임명되면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으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이 처장은 지난 29일 오전 취임 후 언론사 중 처음으로 한국경제신문과 단독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는 격식을 갖추지 않고 아침 도시락을 먹으면서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이뤄졌다. 이 처장은 “공직사회에도 민간 분야처럼 치열한 경쟁이 필요하다”며 파격적인 인사 개혁을 예고했다.

▷민간 출신이 100만 공무원 인사를 책임지는 수장에 임명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최근 공무원에 대한 신뢰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공직사회를 혁신하는 데 과연 ‘셀프’ 개혁을 통해 국민의 눈높이를 충족할 수 있느냐는 고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삼성그룹에서 삼성SDS, 삼성종합기술원,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등이 생겨날 때마다 새 조직에서 인사 업무를 맡았습니다. 이들 기업을 일류 조직으로 성장시킨 경험을 토대로 공직사회를 개혁하고자 합니다. 인사혁신처 출범은 공직사회 변화를 희망하는 국민의 절박한 염원의 표현입니다. 참고로 전 박근혜 대통령과는 일면식도 없습니다.”

이근면 인사혁신처장은 △경기 파주 출생(62) △중동고 졸업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졸업 △아주대 경영대학원 석사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인사팀장(전무) △삼성광통신 대표이사 부사장·경영고문
이근면 인사혁신처장은 △경기 파주 출생(62) △중동고 졸업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졸업 △아주대 경영대학원 석사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인사팀장(전무) △삼성광통신 대표이사 부사장·경영고문
▷한국 공무원의 경쟁력은 어떻습니까.

“한국의 국가 경쟁력은 높지만 공무원의 경쟁력은 떨어집니다. 공무원들의 능력은 우수합니다. 민간 기업보다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민간 기업보다 우수하다는 소리를 못 듣는 이유가 뭘까요. 안정성만을 강조하다 보니 공무원의 경쟁력이 떨어진 것 같습니다. 국가 발전과 경쟁이 없다면 안정성도 담보돼선 안 됩니다. 민간 기업은 ‘공무원처럼 일한다’ ‘관료주의적’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혁신을 시작합니다. 전 세계 국가를 통틀어 일 잘하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 공무원이 됐을 때 국민에게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성장은 경험과 경쟁을 통해 이뤄집니다.”

▷삼성그룹과 비교하면….

“기업은 효율을 중시하지만 정부는 공공성도 감안해야 합니다. 대국민 서비스와 국가 발전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기 때문에 효율만 중시할 수는 없습니다. 공직사회에 삼성문화를 그대로 심을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경쟁력은 삼성 사람들보다 높일 계획입니다.”

▷경쟁력을 높일 방안이 있는지요.

“우선 공무원 순환보직제를 개선하겠습니다. 공무원들의 전문성이 부족한 원인은 순환보직제 탓입니다. 임용된 지 8개월 만에 부서를 옮기는 공무원도 있습니다. 순환보직제가 계속되는 한 공무원의 경쟁력은 나아질 수 없습니다. 저는 37년 동안 인사 업무를 맡았는데, 공직사회에도 그런 공무원이 필요합니다. 전문성을 갖춘 공무원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보상과 처우도 있어야 합니다.”

▷공무원 정년 보장은 어떻게 보십니까.

“공무원 정년은 60세까지지만 1급은 정년 보장이 안 됩니다. 이런 훈련된 인재들이 50대 초·중반 너무 이른 나이에 나가는 것도 문제입니다. 국가가 양성한 인재의 경험과 경륜을 좀 더 활용해야 합니다. 경직된 고시 기수문화로 인한 이런 관행도 개선하고, 공직에 봉사할 수 있는 시간을 늘릴 방안을 검토해야 합니다.”

▷승진 연한을 늦추겠다는 것인지요.

“오히려 반대입니다. 9급에서 5급 가려면 30년 가까이 걸립니다. 한 직급에서만 10년 넘게 머무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렇게 되면 동기 부여가 떨어집니다. 5급까지는 빨리 승진하도록 해야 합니다.”

▷순환보직제 개선과는 모순되지 않습니까.

“‘투트랙’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입니다. 전문성을 키워야 하는 분야의 공무원은 직급에 관계 없이 오랫동안 한 자리에서 근무할 수 있게 할 계획입니다. 전문성 대신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고 승진을 원하는 공무원은 ‘패스트트랙’으로 승진 연한을 단축하겠다는 것입니다. 민간 기업에선 과거 30대 사장도 나왔지만 고령화로 지금은 불가능합니다. 삼성에선 과를 통솔하지 않는 과장도 수두룩합니다. 공직사회도 직급을 운영하는 데 있어 유연성을 가져야 합니다.”

▷공직사회 개방성 확대 방안은 있는지요.

“민간의 유능한 인재를 공직사회로 영입하는 길을 늘려야 합니다. 지금도 민간 출신이 있지만 소수입니다. 능력 있는 민간 인력에겐 인센티브 등 연봉을 과감하게 높여줄 예정입니다. 공무원도 적극적으로 민간 분야에 가서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민·관 유착을 우려하는 지적도 있습니다.

“능력과 경륜을 갖춘 공무원이 퇴직 후 민간 분야에서 일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장벽을 쳐서 (민·관 교류를) 무조건 가로막는 것은 안 됩니다. 다만 유착 가능성을 철저히 막겠습니다. 공무원들이 위임사무기관 및 로비단체 성격인 협회에 취업하는 것은 전면 금지할 계획입니다. 공무원도 능력 있으면 민간에 가도록 하되, 유착 가능성이 있는 분야는 사전에 막겠다는 것입니다.”

▷현행 공무원 채용제도를 어떻게 봅니까.

“현행 5·7·9급으로 이뤄진 채용제도를 재검토할 계획입니다. 공무원 채용은 오랫동안 세 개 트랙으로 운영돼 왔는데 손질이 필요합니다. 현행 1~9급은 크게 세 덩어리(직급) 정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개선 방안을 찾을 예정입니다.”

▷공무원연금 개혁이 화두입니다.

“공무원연금의 본질은 고령화와 저출산입니다. 고령화로 연금 수령자는 급증하는데 연금을 내는 공무원은 부족한 게 문제입니다. 자칫하면 몇십년 후엔 제도 자체가 없어질 수 있습니다. 오히려 공무원 입장에서도 빨리 개혁해야 합니다. 젊은 공무원들은 ‘내가 나중에 연금을 받을 수 있게 지금 빨리 개혁해 달라’고 얘기해야 합니다.”

▷공무원노조의 반발이 거센데요.

“노조가 하기 싫다고 안 할 문제가 아닙니다. 싫지만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노조도 ‘못 합니다’라고만 할 게 아니라 의견을 개진해야 합니다. 국민의 요구에 노조가 답할 차례입니다.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노조도 알아야 합니다.”

▷민간 대비 공무원 처우가 낮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공무원 봉급은 대개 100인 이상 기업과 비교합니다. 전체 국민 눈높이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현재 평균 월급이 200만원에도 못 미치는 근로자가 전체의 절반입니다. 앞으로 공무원의 경쟁력이 올라가면 민간 기업 수준의 봉급은 충분히 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공무원 봉급 기준의 잣대를 민간 최고기업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공직사회에 성과연봉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고위 공무원단은 이미 도입하고 있습니다. 개인 동기 부여 측면에서 성과에 대한 보상을 조금씩 넓혀가는 것은 시대적 추세입니다. 다만 연봉제를 도입하는 데 있어 직무 구분이 필요합니다. 연봉제를 통해 성과 효율을 높이는 직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직무도 있습니다.”

정리=강경민/김대훈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