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올 들어 천문학적인 벌금을 부과받았음에도 실적은 크게 나빠지지 않았다. 일부는 시장의 예상치를 뛰어넘는 실적을 내놓기도 했다. 채권 부문 등의 매출이 주춤한 상황에서 인수합병(M&A)과 기업공개(IPO) 분야가 수익을 안겨주는 효자 노릇을 했기 때문이다. 특히 M&A 시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 규모로 성장하면서 투자은행들은 짭짤한 수수료 수익을 올리고 있다.
1000억달러 ‘메가딜’에 IB들 함박웃음

시장조사기관 딜로직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14일까지 성사된 미국 기업의 M&A 규모는 1조3540억달러(약 1507조원)로 집계됐다. 종전 최고치였던 1999년의 1조3520억달러를 넘어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올해 미국 내 M&A 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1조5000억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예측했다. 글로벌 M&A 규모도 3조1000억달러에 달해 2008년 금융위기 이전 수준에 근접할 것으로 전망된다. M&A 시장이 호황인 이유는 기업들이 풍부해진 자금력으로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WSJ는 “각국 중앙은행의 돈풀기로 자금조달 비용이 낮아졌다”며 “주가가 올라 인수대금을 주식으로 제공할 여지가 커진 것도 M&A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17일 하루에만 1000억달러에 달하는 ‘메가딜’이 성사됐다. 다국적 제약사 액타비스가 보톡스 업체 엘러간을 660억달러에 인수하고, 세계 2위 유전개발 서비스 업체 할리버튼은 3위 베이커휴즈를 346억달러에 사들이기로 합의했다. 액타비스의 엘러간 인수 규모는 올해 최대다.

일반적으로 M&A 거래 규모가 커지면 투자은행들의 자문 수수료 수입도 함께 늘어난다. 올해 글로벌 은행들의 M&A 자문 매출은 177억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4% 증가한 것으로 딜로직은 추산했다. 기업 인수에 나서는 기업들이 인수자금을 투자은행으로부터 대출받는 경우도 있어 추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채권 발행이나 위험관리 서비스에서 사업을 따내는 데도 M&A 실적은 영향을 미친다.

골드만삭스, M&A 자문 최강자로 우뚝

올해 글로벌 투자은행의 M&A 자문 순위는 ‘대어’를 누가 가져갔느냐에 따라 결정됐다. 딜로직에 따르면 골드만삭스는 올해 M&A 자문 규모 9353억달러로 1위를 차지했다. 액타비스-엘러간, 할리버튼-베이커휴즈 두 건의 대형 인수전에 모두 참여한 덕분이다. WSJ는 1000억달러에 달하는 두 건의 M&A 거래를 통해 골드만삭스 등 은행들이 챙긴 수수료 수입이 3억달러가 넘는다고 전했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M&A 자문으로 모두 17억달러를 벌어들일 것으로 추산됐다.

모건스탠리는 M&A 자문 규모 7044억달러로 2위를 기록했다. JP모간이 6743억달러로 3위에 올랐고, 뱅크오브아메리카(6276억달러), 씨티그룹(6167억달러)이 그 뒤를 이었다. 6~10위는 바클레이즈(5438억달러), 라자드(4809억달러), 도이치뱅크(3956억달러), 크레디트스위스(3684억달러), UBS(2595억달러)가 차지했다.

그러나 M&A 합의가 모두 성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올 들어 10월까지 무산된 M&A 거래가 총 5730억달러에 달한다고 전했다. 이는 2008년(6400억달러) 이후 최대 규모다. WSJ는 2·3위 간 합병인 할리버튼의 베이커휴즈 인수 건도 반독점 당국의 승인을 얻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