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10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로마 메이커페어’에 참석했다. 메이커페어는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민간 하드웨어 개발자, 이른바 메이커들의 축제다. 인텔 CEO가 이 행사에 참석한 것은 크르자니크가 처음이다.
인텔의 부활…중저가 모바일칩 전략 통했다
인텔이 부활하고 있다. 실적이 개선되고 시장 점유율도 빠르게 높아지는 추세다. 인텔은 정보기술(IT) 업계의 중심축이 PC에서 모바일로 이동하면서 한동안 고전했다. 돌파구는 중소 제조업체에서 찾았다. 삼성전자 등 기존 대형 구매처에서 중국 저가 태블릿 업체 등으로 판매망을 다변화한 것이 주효했다. 웨어러블과 사물인터넷(IoT) 등 ‘포스트 모바일’ 분야 준비에도 열심이다. 민간 하드웨어 개발자와 중국 중소 제조사 등 ‘풀뿌리’ 하드웨어 생태계를 조성해 ‘잃어버린 10년’을 단기간에 만회하겠다는 목표다.

○MS 호재로 번 돈, 모바일에 투자

인텔은 지난 3분기 사상 최대 매출(145억5000만달러)을 올렸다. 분기 최초로 마이크로프로세서 출하량도 1억개를 넘어섰다. 주가는 12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가 자사 운영체제(OS)인 윈도XP 지원을 종료하면서 PC 교체 수요가 늘어난 것이 호재로 작용했다. 매출 145억5000만달러 가운데 92억달러가 PC 부문에서 나왔다.

인텔은 호기를 놓치지 않고 대대적인 모바일 부문 투자에 나섰다. 중국 중소기업이 브랜드 없이 시장에 내놓는 중저가 태블릿PC인 ‘화이트박스 태블릿’을 공략하기 위해 저가 공급정책을 밀어붙였다. 보조금도 화끈하게 실었다. 전략은 먹혀들었다. 지나친 저가 공세로 실적은 좋지 않았지만 시장점유율은 확실히 높아졌다. 올 2분기 인텔은 모바일 시장의 터줏대감인 애플에 이어 태블릿 PC 프로세서 공급량 세계 2위에 올랐다. 3분기 3000만대의 태블릿 PC 칩 출하 목표를 달성한 인텔은 연내 4000만대 돌파가 무난할 전망이다. 내년에는 중저가형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통합 칩 ‘소피아’를 통해 스마트폰 시장 장악까지 노리고 있다.

○풀뿌리 생태계가 혁신 동력

인텔이 혁신의 화두로 삼은 것은 ‘생태계’다. PC가 유행하던 시절에는 생태계라는 개념이 없었다. 몇몇 유명 제조회사가 하드웨어 시장을 나눠 갖는 과점의 시대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중국 중소 제조사들의 도약과 스스로 만드는(DIY) 하드웨어의 유행 등에 힘입어 하드웨어 시장도 다변화됐다. 수많은 IT기기 제조업체를 인텔이라는 울타리에 집어넣는 전략이 필요해진 것이다.

화이트박스 태블릿 ‘대박’도 생태계로 눈을 돌렸기 때문에 가능했다. 올초 크르자니크 CEO가 “태블릿 4000만대에 들어갈 칩을 출하하겠다”고 선언했을 때만 해도 삼성전자와의 협력을 염두에 뒀다. 지난해 출시된 삼성전자 갤럭시탭에 인텔 프로세서가 내장돼 올해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출시된 삼성전자 태블릿 PC 라인업에는 인텔 칩이 들어가지 않았다. 중국의 풀뿌리 제조사로 신속히 타깃을 바꾼 덕에 낭패를 피할 수 있었다.

팹(반도체 제조 설비) 출신인 크르자니크 CEO는 하드웨어 벤처기업에도 관심이 많다. 로마에서는 대표적인 오픈소스 하드웨어 플랫폼 ‘아두이노’와의 협력방안도 발표했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