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사외이사制 '손질'…교수·공무원 비중 확 준다
다음달 10일부터 교수나 공무원은 주요 금융회사의 사외이사가 되기 어려워진다. 대신 이사회에서 금융과 회계 전문가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게 높아진다.

사외이사에 대한 실적평가가 까다로워지고 은행과 은행지주회사의 사외이사는 다른 회사의 사외이사를 맡을 수 없다. ‘KB사태’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사외이사 제도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한 방안이다.

◆은행·지주 등 118개사에 적용

금융위원회는 20일 신제윤 금융위원장 주재로 금융발전심의회 정책·글로벌분과 확대 연석회의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의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을 확정한 뒤 입법예고했다.

모범규준의 핵심은 다양하고 전문적인 인물로 이사진을 구성하고 권한에 걸맞은 책임을 지우겠다는 것이다. 적용 대상은 은행지주 등 551개 금융사 가운데 자산 2조원 이상인 118개사다.

신 위원장은 “일부 사외이사는 전문성을 갖추지도 못했음에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자기 권력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선임 단계부터 평가와 공시에 이르는 전 과정을 개선토록 했다”고 말했다.

모범규준에 따르면 사외이사는 금융 경제 경영 회계 법률 등 관련 분야의 충분한 실무경험과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실무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에 교수와 공무원 출신은 불리하다.

9월 말 현재 신한 KB 하나 우리(현 우리은행) 등 4대 금융지주의 교수·연구원 등 학계와 공무원 출신 사외이사는 전체 32명 가운데 20명(62.5%)에 달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사회는 위험관리위원회와 보상위원회를 두고 각각의 위원회에는 금융 회계 재무분야 경험자를 1명 이상 배정해야 한다”며 “모범규준 시행 이후 3년이 지나면 교수와 공무원 비중이 절반 이상 줄어들 것 같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으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KB금융지주 사외이사들의 경우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되는 현직 교수들은 대부분 물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사외이사들은 재선임 시 자기추천을 할 수 없다. 매년 자체평가를 받고 금융위 권고에 따라 2년마다 외부기관으로부터 평가를 받는다. 은행과 은행지주 사외이사 임기를 2년에서 1년으로 줄이는 방안도 이번 입법예고에 포함시켰지만 시행은 어려울 전망이다. 금융발전심의회 내부 이견이 크기 때문이다.

◆CEO 승계 프로그램 마련해야

이사회는 최고경영자(CEO) 승계를 평시업무로 해야 한다. 누가 언제 어떤 방식과 절차로 선임해야 하는지 CEO 승계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1년에 한 번 이상 계획의 적정성을 점검해야 한다.

모범규준은 새로운 CEO를 30일 내에 선출하도록 하고 있다. 이사회 산하 임원후보추천위원회가 CEO 후보군을 발굴, 관리하고 주요 활동내역 등을 검증하며 이사회에 CEO 후보자를 추천하는 경우 구체적인 추천경로와 추천경력 추천사유를 밝히고 이를 공시해야 한다. CEO 승계 내부규범과 구체적인 승계 절차도 연차보고서에 포함해야 한다.

금융지주회사는 자회사임원후보추천위원회를 둘 수 있도록 허용한다. 금융지주사의 완전 자회사의 경우 은행과 보험사만 3인 이상의 사외이사를 두고 나머지는 선임하지 않는다.

금융위는 이익을 내지 못하면 임금도 줄어드는 성과주의가 은행 등 금융권에 정착되도록 독려하기로 했다. 금융위는 다음달 10일 입법예고 기간이 끝나면 당일 금융위를 열어 곧바로 모범규준을 시행할 예정이다.

박종서/장창민 기자 cosmos@hankyung.com